<이원호의 경제톡> 토요타의 변화, 성공할까
2025-09-22
한국은행 역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산업 공동화, 고용 위축, 인재 유출 등의 리스크가 크다”고 경고하며, 막대한 규모의 투자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실제로 3500억달러는 한국의 최근 몇 년 치 해외직접투자(FDI) 총액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이고, 또한 외환보유액의 80%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거액을 단기간에 현금으로 동원하는 것은 외환시장과 금융 안정성에 심각한 부담이 되는 것은 명확하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차라리 관세를 감수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분석에 따르면, 25%의 상호 관세가 부과될 경우 한국의 실질 GDP는 연간 0.3~0.4% 줄어들어 약 7~9조원의 손실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는 현금 일시 지출과 연간 손실을 단순 비교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핵심은 투자의 총액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즉, 현금 투자 대신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투자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현재 대미 투자를 둘러싸고 다양한 방법이 논의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관세를 감수하고 투자를 하지 않는 경우 ▲관세를 일부 완화하는 조건으로 3500억달러를 분할 투자하는 경우 ▲현금과 펀드·채권을 혼합한 구조화된 투자로 충격을 줄이는 경우 등이다. 이들은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공통적인 점은 투자의 ‘숫자(규모)’가 아니라 ‘구조’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한 선택인 만큼 일관된 원칙을 기반으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현금 최소화와 장기 분할과 투자 구조의 다변화다. 무조건적인 현금 투자는 지양하고, 공동 펀드와 채권 발행,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다양한 투자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3500억달러를 한꺼번에 투자하기보다는 10~15년에 걸쳐 분할 집행하여 경제적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 경제 상황과 환율 변동성을 고려하여 탄력적인 스케줄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상호주의 원칙 강화다. 투자의 전제조건으로 비자 문제 해결, IRA와 CHIPS 보조금 접근성 명문화 등 실질적인 상호주의 패키지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특히 현지 파견 인력의 비자 제약 완화는 단순한 행정 편의를 넘어, 기술 이전과 현지 사업 운영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또한 보조금과 조달 규정에서 한국 기업이 실질적인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장이 필요하다. 우리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만큼, 미국도 한국 기업에 대한 차별 없는 지원과 제도적 이익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국내 산업과의 상생 연결이다. 해외 투자와 동시에 국내 R&D와 설비 투자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여 산업 공동화를 막아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 협력사와의 동반 투자를 병행하거나, 일정 비율 이상을 국내 신산업·신기술 연구개발에 재투자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국내 공급망 경쟁력을 유지하고, 중소·중견기업의 기술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상생 구조가 자리 잡아야 해외 투자로 얻은 성과가 국내 경제로 되돌아오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적 접근을 통해 3500억달러 투자가 단순한 비용이 아닌 북미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완화하며, 장기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전략적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얼마’를 내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설계해 국가적 손실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한·미 양국 간 상호 이익을 극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현명한 해답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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