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싱가포르의 ‘풀스택 AI 허브’에서 얻어야 할 교훈

예측 가능하고 유연한 규제로 기업 활동 최대한 보장 
자본과 제도가 함께 움직이며 생태계의 안정성을 높여
외국 인재 장기 체류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생활 지원
‘韓소버린AI’ 혁신 생태계서 효과 나게 제도 개선해야
빅터뉴스 2025-08-25 14:33:07
싱가포르는 자체 AI 원천기술이나 대규모 연구개발 역량은 부족하지만, 글로벌 AI 경쟁력 평가에서는 오히려 최상위권에 올라 주목받고 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의 ‘AI·ICT 브리프’는 최근 싱가포르가 글로벌 기업들의 AI 허브로 부상한 점을 분석하고 있으며, 세일즈포스(Salesforce)가 발표한 AI·디지털 경쟁력 지수에서 싱가포르는 26.5점으로 세계 2위(미국 39.7점)였다. 영국·한국·캐나다 등이 그 뒤를 이었다. AI 분야에서 싱가포르의 약진은 숫자 자체보다 생태계 설계 역량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한국은 경제 규모와 기술, 인재 양성, 글로벌 기업 기반에서 싱가포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점을 지니지만, AI 경쟁력에서는 싱가포르에 뒤처지는 성적표를 받고 있다. 한국은 AI에 막대한 R&D 투자와 함께 정부주도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생활·교육·영주권 지원 같은 정착 제도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고, 규제가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외국의 우수한 인재와 기업이 한국에 자리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싱가포르는 원천기술의 한계를 인정한 뒤 규제의 예측 가능성, 컴퓨트 접근성, 자본, 비자정책을 패키지로 묶어 성과를 냈다. 따라서 싱가포르의 강점은 기술의 ‘양’이 아니라 생태계 설계다. 정부·민간·글로벌 인재를 한 가치사슬로 묶어 연구–실증–상용화를 연결했다. 2023년 국가 AI 전략 2.0(NAIS 2.0)을 중심으로 규제/거버넌스–투자–인재–실증의 4축을 맞물리게 하고, 규칙은 간결·예측 가능하며 안전장치를 병행한다. 기업은 제도 불확실성 대신 제품·시장에 집중한다.

싱가포르의 강점의 첫째는 예측 가능하고 유연한 규제 정책이다. 규제는 브레이크가 아니라 트랙의 경계선처럼 작동한다. 규칙은 간결하고 예측 가능하게 설계되어 기업들이 불확실성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한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 모델에 대한 거버넌스 프레임워크를 마련해 ‘먼저 실험하되 안전하게’라는 신호를 주었다. 데이터 활용도 보호와 활용의 균형을 맞추며, 가이드라인을 미리 공표해 기업과 연구자들이 준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원호 박사


둘째는 패키지로 움직이는 투자·세제·거버넌스다. 국부펀드와 민간 자본이 초기 위험을 함께 분담하고, 예측 가능한 세제와 R&D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업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제도적 신뢰 덕분에 해외 기업의 연구거점과 데이터센터 유치가 가능했고,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아시아 연구본부를 싱가포르에 설립한 것도 그 결과물이다. 자본과 제도가 함께 움직이며 생태계의 안정성을 높였다는 것이 두 번째 강점으로 지적된다.

셋째는 정착을 위한 인재 정책이다. 싱가포르의 인재 정책은 단순히 외국 인재를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머물 이유’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Tech.Pass, ONE Pass 같은 제도를 통해 인재가 특정 기업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창업이나 프로젝트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배우자 취업, 자녀 교육, 가족 동반 정착까지 제도에 포함시켜 장기 체류와 안정적인 생활을 지원한다. 결과적으로 도시 전체가 일·주거·교육이 연결된 생활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인재가 정착하고 생태계 내부 순환이 빨라졌다.

한국은 반도체, 통신망, 의료·산업 데이터, 그리고 두터운 엔지니어링 인력 등 세계적 수준의 기반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강점이 제도와 연결되지 못하면서 글로벌 경쟁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복잡한 절차와 경직된 규제는 기업과 연구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고, 외국 인재에게는 한국이 단기 체류지로만 보이게 만드는 한계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의 자산을 단순한 ‘강점’에 머물게 두지 않고, 혁신 생태계 안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

이를 위해 규제는 예측 가능하고 유연해야 하며, 투자와 세제는 장기적 관점에서 패키지로 설계되어야 한다. 인재 정책 역시 단순 채용을 넘어 주거·교육·의료·영주권까지 아우르는 정착 지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와 실행이다. 인재가 안심하고 머물며, 기업이 장기 계획을 세우고, 규제가 혁신의 길을 열어주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한국은 보유한 자산을 실제 성과로 연결할 수 있고, AI 세계 3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목표도 현실이 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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