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소버린 AI가 한국 제조업을 부흥시킬 수 있을까
2025-09-01
그러나 이번 행보가 곧바로 “완전한 자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외산(外産) 의존을 벗어나 독자적인 반도체 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은 분명하지만, 그 성과가 글로벌 최첨단 시장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논쟁이 존재한다. 이번 발표가 중국 반도체 산업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그 파급 효과를 면밀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자립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설계, 제조, 메모리, 패키징 등 세부 단계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설계 과정의 핵심 툴인 EDA는 대부분 미국·유럽 기업이 장악하고 있고, 토종 대안은 성능과 신뢰성에서 아직 격차가 크다. 제조 단계에서도 SMIC가 7나노급 공정을 구현했다고는 하지만, 대만 TSMC에 비해 수율과 전력 효율에서 한참 떨어진다. 무엇보다 AI 연산 성능의 병목을 좌우하는 HBM 메모리와 첨단 패키징에서는 한국과 대만이 확실한 우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알리바바 칩은 중국 내 일부 수요를 충족하는 데 의미가 있을 뿐,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대만과 정면 경쟁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런 제약 속에서도 중국은 미국과 동맹국이 장비, 설계 툴, 메모리 공급을 제한하자 자체 생태계를 키우는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알리바바, 화웨이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중국산 칩+중국산 클라우드 서비스’라는 독자적 조합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 체계가 자리 잡을 경우 중국 내 AI 서비스 시장은 폐쇄적 구조로 변할 수 있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한국·대만·유럽 중심의 기존 체계와 중국 중심 체계로 양분하는 흐름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변화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직격탄이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보유하고 있어 미국 정부의 압력이 거세지면 공장 업그레이드와 증설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중국 내 사업 운영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지만, 동시에 기회 요인도 존재한다. 현재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의 핵심은 HBM과 첨단 패키징으로 우리나라가 압도적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다. 중국이 이 기술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된다면, 미국과 유럽, 중동 등의 데이터센터 투자 수요는 한국 기업으로 더 크게 흘러들 가능성이 높다.
알리바바의 AI 칩 발표는 아직 글로벌 최첨단 시장을 흔들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이 ‘자체 생태계 구축’이라는 장기 전략을 향해 착실히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기간에 기술 격차를 해소하기는 어렵지만, 방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 주도의 전략 투자를 기반으로 점진적인 자립을 추구할 것이다. 특히 미국의 수출 규제가 장기화된다면,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독자 모델 개발을 통해 자국 시장을 공고히 하며 글로벌 공급망에서 점차 분리된 독자 지형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양분화 가능성에 대응하는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먼저 HBM과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초격차를 유지하고 확대해야 한다. 단순히 제품을 공급하는 차원을 넘어, 고객 맞춤형 솔루션 제공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유럽은 물론이고 동남아나 중동과 같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세재 및 전력, 용수, 인력 등 인프라 지원 등을 통해 안정적인 투자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 시도는 단기적으로는 우리라에 위협적인 요인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확실한 글로벌 파트너로 자리매김한다면 이번 변화는 오히려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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