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세계 덮치는 ‘S공포’

차량용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 작동 못해 물가 압력
中전력난 글로벌 경제 충격과 함께 인플레이션 부추겨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스태그플레이션 대응책 강구해야
2021-10-05 16:52:03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S공포)’가 세계 경제를 덮고 있다. 코로나 백신 보급과 함께 빠르게 회복하는 수요에 비해 글로벌 공급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되면서 이 같은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아직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언급하기에 이르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반론 또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즈(FT)는 지난달 30일자 기사에서 ‘식품가격 폭등과 에너지 부족 사태 등이 현실화되면서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물가상승(인플레이션) 기조가 예상보다 길어진다면 성장 둔화를 걱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Global Principal Investor의 수석 전략가인 시마 샤(Seema Shah)의 말을 인용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2022년까지 지속되면 소비자 지출이 타격을 입기 시작할 것”이라며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를 경고하는 쪽에서는 글로벌 공급망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례로 연초 자동차업계를 강타한 차랑용 반도체 대란은 수요 예측이 빗나가면서 시작된 글로벌 공급망 붕괴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런데 약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와 차량용 전자제어장치(ECU) 생산 공장이 몰려있는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에 백신 공급이 늦어지면서 제조업의 정상화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세계 경제 위기는 중국의 전력 부족에서 시작된 생산 차질과 이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붕괴 조짐에 있다. 코로나 백신의 보급에 따른 세계 경제의 회복 기대감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이는 세계 최대의 원자재 소비국인 중국에게는 직격탄이 되었다. 특히 중국이 자국 전력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석탄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전력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의 전력 공급 부족으로 인해 중국 내 모든 기업이 생산에 차질을 빗고 있다. 전력난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분야는 알루미늄, 철강 산업부터 반도체, 기계 등 전 산업에 걸쳐있다. 중국에 진출한 애플, 테슬라와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 중단 사태도 잇따르고 있다. 노무라 증권의 팅 루(Ting Lu)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전력 부족 사태는 글로벌 시장에 충격을 주고, 이는 미국 등 선진국의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 발 위기가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이 높지 않는다는 점이다. 석탄과 원자재 가격의 상승 추세와 더불어 중국 정부가 내년 초 베이징 올림픽 이전 까지는 전력 공급용 석탄 확보에 적극적이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올림픽 기간 중 ‘푸른 하늘’을 확보하기 위해 성장을 일부 희생해도 좋다는 중국 정부 특유의 전략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인플레이션 상황이 꺾이지 않고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 예측하는데 이 점 또한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언급되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협이 1970년대 초와 같은 규모로 진행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왜냐하면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정부와 금융당국이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과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1920년대 대공황 수준으로 번지지 않은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올해 초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한 세대 내에서 보지 못한 인플레이션의 압력(inflationary pressures of a kind we have not seen in a generation)”이라고 표현한 것이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 압력 또한 전 세계가 중국 의존도를 줄이지 않는 한 피해가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 각국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한다면 경기 침체는 불을 보듯 뻔하다.

파이낸설 타임즈는 현 상황에 대해 “1970년대와 다른 현대의 스태그플레이션(It’s not the 1970s, but this is modern-day stagflation)”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인플레이션이 내년까지 지속된다면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결국 ‘물가 상승-경기 침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몇 십 년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어려움에 대응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테이터연구소 소장(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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