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검찰개혁? 문제는 정치야!

2019-10-16 15:40:25
지난달 28일 서초동 촛불집회(왼쪽)와 이달 3일 광화문 집회(사진=빅터뉴스DB)
지난달 28일 서초동 촛불집회(왼쪽)와 이달 3일 광화문 집회(사진=빅터뉴스DB)

 

조국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면서 14일 사퇴했다. 오전 11시 ‘검찰개혁안’을 발표한 지 불과 3시간 후였다.

곧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 조합’에 의한 검찰개혁을 희망했지만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고 탄식했다.

대통령은 정말 꿈을 꾸었던 것일까.

지난 7월 윤석열 신임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대통령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았던 자세를 끝까지 지켜주기 바란다”며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될 것”을 주문했다.

8월 9일 대통령이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후 딸 부정입학, 사모펀드, 웅동학원 채용비리 등 후보자 가족 일가의 의혹이 줄줄이 불거졌다. 언론의 검증과 야당의 공세는 거셌다.

대통령이 꿈꿨다는 ‘환상적 조합’ 한 축의 칼날이 다른 축을 겨눴다.

9월 6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는 시각 검찰은 후보자 부인 정경심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며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통령이 임명한 조 장관은 23일 출근 후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 당했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똑같이 대하라’던 대통령이었지만 ‘꿈꾸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조국 장관 사퇴 후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송구스럽다”는 말을 두 번 하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큰 진통을 겪은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통령으로서 국민들께 매우 송구스러운 마음”이라 털어놨다.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정치적 사안에 국민 의견이 나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국론 분열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던 대통령이었다. “대의정치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들 때 국민들이 직접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라며 “직접 목소리를 내 주신 국민들께 감사드린다”던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말한 ‘민의’는 무엇이었나. 서초동 촛불과 광화문 태극기는 둘 다 민의였나. 대통령이 야기해 송구스럽다는 갈등의 원인은 ‘윤석열 임명’이었나 ‘조국 임명’이었나.

대통령은 두 마디로 사과했지만 국민들은 두 달 동안 볼 꼴 못 볼 꼴 다 봤다. ‘조국 블랙홀’에 국정은 마비됐고 온라인 민심은 ‘조국 힘내세요’와 ‘조국 사퇴하세요’로 쪼개졌다. 광장도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라져 한쪽은 ‘조국수호 검찰개혁’을, 다른 한쪽은 ‘조국구속 문재인퇴진’을 부르짖었다. 의혹만으로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던 대통령이 두 달간 국론분열 국정마비라는 나쁜 선례를 만들고 말았다.

어떤 이들에겐 ‘검찰개혁’과 동의어였던 조국 장관은 지명 66일, 임명 35일 만에 사퇴했다. 사퇴 전 내놓은 검찰개혁안은 특수부 축소와 ‘반부패수사부’로 명칭 변경이었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위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심야조사 폐지, 부당한 별건수사와 수사 장기화 제한, 검찰에 대한 법무부 감찰 강화가 포함됐고, 피의자의 열람등사권을 확대 보장하겠다고 했다. 대통령령으로 가능한 일들이다. 국민인권신장을 위한 중요한 과제들이지만 검찰개혁의 핵심은 아니다. '조국수호'냐 '조국사퇴'냐 장관 한 사람 진퇴에 검찰개혁의 명운이 걸린 양 할 일도 아니었다. 개혁의 요체인 검경수사권 조정과 문제의 공수처법안은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다.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를 명목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처장 임명을 대통령이 하게 돼 있는 공수처법안에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반대할 뜻이 분명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직선거법과의 연계 문제도 정치세력마다 셈법이 복잡하다. 지난 4월 ‘동물국회’를 연출하며 패스트트랙에 올렸던 검찰개혁 법안은 시즌2를 앞두고 있다.

국회가 할 일이 많아졌지만 대통령이 말한 ‘대의정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는 조국 사퇴 후에도 이어질 모양이다.

수호할 ‘조국’이 사라진 서초동 집회는 19일 여의도로 자리를 옮겨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촛불문화제를 개최한다. 공수처 설치와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인 자유한국당 의원 수사를 주장할 전망이다. 자유한국당도 같은 날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대전환과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엄정한 검찰수사를 촉구하는 ‘국정대전환 촉구 국민보고대회’로 맞설 예정이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다른 것이 당연하다.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타협하는 것이 공화고 민주주의다. 그 일을 하라고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들을 뽑아놓았다.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언제까지 뜻이 다른 국민들을 광장으로 내몰 것인가.

‘환상적 조합’에 의한 검찰개혁을 꿈꾼 대통령의 희망은 사라졌지만 다시 대통령과 국회의 시간이다. 22일 국회 시정연설에 나서는 문 대통령이 어떤 대국민 메시지를 낼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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