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기약없는 한국은행 금리인하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 사이에서 어중간한 자세
미 금리 인하 시기 관계없이 금리 정책 수립해야
빅터뉴스 2024-02-13 15:27:46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3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예상은 물 건너가는 모양새이다.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 4일 가진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 올해 금리 인하를 신중하게 진행할 것이며 시장이 예상하는 것보다 상당히 느린 속도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연착륙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면서도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 전에 “인플레이션이 2%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더 많은 증거를 보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동안 금리 인하를 둘러싼 시장의 예상은 연준의 입장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연준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점도표는 올해 세 차례 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다만 금리 인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를 주었을 뿐 3월 금리 인하에 관한 확신을 주지도 않았다. 반면 시장에서는 연준이 올해 다섯 차례에 걸쳐 1.25%p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금리 인하가 3월에 시작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파월 의장이 앞선 인터뷰를 통해 “3월 FOMC에서 금리 전망을 업데이트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라고 밝힌 것은 미국 경제의 연착륙을 낙관하지만 조금 더 확실한 시기를 기다리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가 지난 1월 펴낸 ‘최근의 미국 경제 상황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산업생산과 경기판단 관련 지표들이 개선되면서 경기둔화 우려가 낮아지고 있다”고 적고 있다. 금리를 빠르게 인하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원호 박사


실제로 연준의 입장은 상당히 신중하다. 파월 의장은 인터뷰에서 금리 인하는 이제 논의의 시작 단계로 특정 지표가 아닌 광범위한 금융 여건을 살피면서 판단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지난 1월에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기준금리를 5.25~5.5%로 동결하면서, 인플레이션과 고용이라는 양대 목표 간 균형이 개선되는 상황에 정책을 수립(금리 인하 결정)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3월 금리 인하가 어려워지면서 시장은 향후 금리 인하 시기와 인하 폭을 예측하는데 분주하다. 앞서 언급한 한국은행 보고서는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끝났다고 평가하면서, 금리 인하 시점은 IB(투자은행) 10개 중 7개 기관이 예측하는 2024년 2분기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연말 기준금리는 3.95%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도 6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전망한다. 또한 BofA는 금리 인하를 늦게 시작하되 빠른 속도로 진행하기를 바라는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를 전하고 있다.

연준의 금리 인하 시기가 늦춰지면서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중동·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리스크와 높은 생활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경기 진작을 위해 한은이 조기에 금리를 인하하는 방안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이번 연준의 결정으로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최근 한 포럼 강연에서 “국내외 여건을 감안할 때 긴축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필요가 있다”면서 금리 인하와 관련해 선을 긋고 있다.

그런데 연준의 금리 인하 판단은 ‘인플레이션 2% 도달 가능성’이라는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 사이에서 어중간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 가계부채 문제가 더해져 정책 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한은은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와 관계없이 독자적인 금융 정책 수립이 요구된다. 특히 고금리·고물가로 고통을 받는 소상공인과 서민 대책이 시급한 만큼, 가계부채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선에서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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