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커피 심장부, 볼라벤 고원을 가다> ④ 볼라벤서 찾은 ‘숨은 보석’ 엑셀사

기후변화로 20여년 후 아라비카 등 멸종 예고 
고온, 병충해 등 강한 엑셀사 구세주로 떠올라
보급·연구 이어져 ‘미운 오래새끼’서 ‘백조’ 꿈꿔 
신진호 기자 2024-01-01 13:50:11

라오스 참파삭(Champasak)주 바치앙(Bachiang) 인근 한 농가에서 찾은 엑셀사. ‘커피 빅(Coffee Big)’이라고 불리는 엑셀사는 7~8m로 자라 농가 식구들이 해먹 위에서 낮잠을 즐길 정도로 그늘목으로 사랑받고 있었다.    

엑셀사(Excelsa)는 ‘미운 오리새끼’다.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에 비해 체리가 익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수확량도 형편없다. 커피 농가가 외면하는 이유다. 어쩌다 농가에서 키우는 엑셀사의 체리도 시장성이 없기에 로부스타 자루에 섞여 팔려나간다. 

이런 엑셀사가 ‘백조’를 꿈꾸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20여년 후가 되면 지구가 너무 뜨거워져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의 멸종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리베리카(Liberica)와 리베리카 변종인 엑셀사가 구세주로 떠오르고 있다.

엑셀사는 뿌리를 깊게 뻗은 만큼 10m 이상으로 자라 고온과 병충해에도 강하다. 700m 이하 저지대에서도 잘 자란다. 맛이 순하면서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아라비카와 향미(Flavor)를 견준다.

이번 라오스 커피 취재에서 어렵게 엑셀사를 만났다. 그러나 아직도 엑셀사는 미운 오리새끼이기에 ‘영접의 길’은 쉽지 않았다.

엑셀사는 볼라벤 고원에 베트남과 태국 기업 등의 대규모 재배 단지가 있지만 농장 공개를 꺼려 가지 못했다. 대신 라오스 농림부에서 귀뜸해 준대로 참파삭(Champasak)주 바치앙(Bachiang) 인근을 뒤지기로 했다. 

길을 안내한 클럽그린 최한용 대표는 “엑셀사는 상품성이 낮아 커피밭 말뚝이나 담장용 울타리 나무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번에 보게 될지 모르겠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팍세(Pakse)에서 승차한 차량이 16번에서 20번 도로를 갈아타고 한참을 내달렸다. 시장이 형성된 제법 큰 마을 서너개를 지나면서 고도계는 800~1300m를 넘나들었지만 엑셀사는 보이지 않았다. 최 대표가 서너 차례 차량에서 내려 마을 주민에게 엑셀사에 대해 물어봤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일몰 시간이 다가오면서 초조해졌다. 차량은 어느새 비포장도로에 접어들면서 한적한 마을로 진입했다. 최 대표가 마지막이라는 표정으로 차량에 내려 구멍가게에 들어갔다. 주인과 한참을 얘기하더니 뜻밖에도 “바로 건너편 집에 엑셀사가 있다”고 말했다.

차량이 그 집 마당에 주차한 뒤 내려 살펴봤지만 커피나무 같은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해먹이 걸려 있는 느티나무처럼 그늘목으로 보이는 나무 2그루가 마당 한켠에 서 있었다. 놀란 여주인과 가족이 집안에서 뛰어 나왔다.

사정을 얘기하니 주인이 해먹이 걸려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엑셀사였다. 그가 ‘커피 빅(Coffee Big)’이라고 부른 것처럼 나무는 7~8m정도로 훤칠한 모습이었다. 잎 크기도 로부스타의 3~4배 이상으로 컸다. 그러나 가지에 달려 있는 열매는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아라비카 수확이 거의 끝난 시기지만  엑셀사 가지에는 익지 않은 초록색 열매(Green fruits)가 달려 있었다. 엑셀사 체리를 따는 시기는 로부스타 수확이 끝나고서도 한 달이 더 지난 2024년 2월쯤이라고 한다. 

기자가 엑셀사와 로부스타 잎 크기를 비교하고 있다. 엑셀사 잎 크기는 로부스타의 3~4배 이상으로 크다.


“언제 엑셀사를 심었느냐”고 물으니 그는 “10년도 더 된 것 같지만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주인은 “커피 빅은 생산량이 적은데, 공간만 많이 차지한다. 카사바를 심었으면 돈 많이 벌었을 텐데”라며 “조만간 (나무를) 베어버리고 카사바나 두리안을 심을 생각”이라며 인근에 심어 놓은 8헥타르의 엑셀사밭에 대해 넋두리를 이어갔다.     

아라비카의 수확이 거의 끝난 시기지만 엑셀사 가지에 익지 않은 초록색 열매(Green fruits)가 달려 있다. 엑셀사 체리를 따는 시기는 로부스타 수확이 끝나고서도 한 달이 더 지난 2024년 2월쯤이다. 

“기후변화로 엑셀사가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앞으로 체리 가격도 잘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자 그는 “그런 말을 들었다”며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고 했다.

이 농가처럼 존재의 의미도 없던 엑셀사가 라오스에서 관심 품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라오스커피협회(Laos Coffee Association) 통계를 보면 2021년 아라비카 2만2418t, 로부스타 5080t과 함께 엑셀사 223t를 처음으로 수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22년 이상 기온으로 작황이 나빠지면서 아라비카는 1만2831t으로 급락했지만 로부스타(8946t)와 엑셀사(331t) 수출은 늘었다. 엑셀사 수출이 전체 1.5%정도에 그치지만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엑셀사(A)와 유게니오이데스(Eugenioides, B), 로부스타(C, 말레이시아 재배), 아라비카(D), 리베리카(E), 로부스타(F, 인도 재배) 생두 크기 비교. 품종별로 25개씩 놓여 있다. 사진=프런티어스(Frontiers) 캡쳐

우간다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엑셀사 농가 보급과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학술지 ‘프런티어스(Frontiers)’ 2023년 2월 17일자 ‘우간다 커피 고유종과 잠재성에 대한 지속 가능성과 발전에 관한 연구(A review of the indigenous coffee resources of Uganda and their potential for coffee sector sustainability and development)’에서 “우간다 농부들이 엑셀사는 비료를 적게 쓰고도 생산량이 높다고 보고한다”며 “우간다와 남수단에서 생산되는 엑셀사는 중간 정도의 산도, 낮은 쓴맛, 다양한 긍정적인 향미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논문에서 우간다와 인도네시아, 하와이 등지에서 엑셀사는 종간 교배를 통해 새로운 커피 작물에 필요한 특성을 부여하기 위한 번식 파트너(breeding partner)로 제공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커피비평가협회 박영순 회장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뜨거워지는 환경을 극복하면서도 수확량이나 향미의 품질에서 엑셀사 종이 로부스타는 물론 리베리카 종보다 유익하다는 연구보고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유럽의 자본이  이미 라오스 커피 농장에 투입돼 엑셀사를 대량 재배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만큼 우리도 커피 시장 확보 차원에서 투자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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