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신뢰할 수 없는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로 가계부채 역대 최대치
10개월전 “문제 없다”더니 돌연 심각성 경고
문제 해결 위한 장기 플랜 수립해 밀고나가야
빅터뉴스 2023-11-06 12:35:30
한동안 잠잠했던 가계부채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9일 개최된 고위 당·정·대 협의회에서 대통령실과 국민의 힘, 정부 모두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외환위기의 몇십 배 위력이 있을 것”이라며 불씨를 지폈다. 이어서 김기현 대표와 한덕수 총리도 가계부채가 금융 불안정과 도미노 신용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정·대 협의회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강하게 언급한 것은 둔화 조짐을 보이던 가계부채 증가율이 최근에 다시 올라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 가계부채는 2017년 1400조원을 넘어서며 이미 삼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후 저금리 기조와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가계부채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 기승을 부렸던 2022년 한 해 동안 약 150조원이 늘었으며, 그해 3분기에는 1871조원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플레이션에 대응한 고금리 정책이 이어지자 가계부채 증가율은 점차 둔화되기 시작했다. 2022년 3분기를 기점으로 2분기 연속 가계부채가 감소했다. 2023년 1분기 가계부채 총계는 1853조원으로 최고점 대비 17조9000억원이 줄어들었다. 가계부채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부채 총액이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수치다. 가계부채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듯 했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즈음해서 경기 침체의 우려가 대두되자 정부는 경기 부양책 일환으로 부동산 규제 풀기에 나서는 악수를 두었다. 지난해 12월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에 수요 규제를 빠른 속도로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어진 정부의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부동산 중심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다. 주요 내용은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완화 및 규제 지역에서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대출 규제 완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가계부채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따라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조치로 인해 꺾이기 시작한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실제로 한국은행 가계신용 통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계부채는 전분기대비 15조원이 줄었으나, 2분기와 3분기에는 각각 10조원, 8조원이 늘어나 지난해 최대치 수준인 1871조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 또한 상당히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원호 박사
이런 배경에서 정부는 부랴부랴 당·정·대 협의회를 개최해 “1997년 외환위기의 몇십 배 위력”이라며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과도한 부채를 억제하기 위해 DSR 산정 시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변동금리 스트레스 DSR’을 신속하게 도입하겠다고 한다. 결국 주택담보대출을 억제하겠다는 것으로 10개월 전 규제 완화 발표와 비교하면 180도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26일 개최된 협의회에 참석한 한덕수 총리, 추경호 경제 부총리,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10개월 전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때는 몰랐고 이제는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일관성과 신뢰가 결여된 정부 정책의 가벼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었고,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어려운 난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적인 플랜 수립과 함께 작은 실적에 흔들이지 않고 꿋꿋하게 추진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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