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의 커피노트> 겨울철 군고구마가 연상되는 몬순 말라바

찬드라기리 계절풍에 노출…신미 줄고 단맛 높아져
우기 극복하고 가공한 만델링…과숙성 흙내음 느껴
신진호 기자 2022-11-08 13:31:50

이번에 테이스팅하는 커피는 인도의 찬드라기리(Chandragiri)와 인도 몬순 말라바(Monsoon Malabar),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만델링(Indonesia Sumatra Mandheling)이다.

세 커피는 고향인 예멘을 자의가 아닌 타의(他意)로 떠나 이역만리에서 꽃을 피웠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농부가 커피 열매의 과육을 벗겨낸 뒤 점액질을 물로 닦아 만든 파치먼트(Parchment)를 햇볕에 말리고 있다. 사진=커피비평가협회 제공 

17세기 인도의 이슬람 학자인 바바 부단(Baba Budan)이 메카를 순례하고 예멘에 들리기 전 까지, 커피는 오직 예멘만이 이슬람권과 유럽에 공급하는 ‘세계 초일류 상품’이었다. 수출 전진기지는 모카항. 예멘은 커피를 독점하기 위해 씨앗 반출을 금지하고 로스팅한 커피나 생두를 살짝 볶아 수출했다. 

하지만 바바 부단이 7개의 커피 씨앗을 몸 속에 숨겨 귀국하면서 예멘의 독점권이 위축됐다. 더욱이 바바 부단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네덜란드 상인들은 씨앗이 아닌 커피 나무를 통째로 빼내 식민지인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심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The Dutch East India Company)를 세우고 해상 무역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선박에는 군대와 대포를 싣고 다닐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네덜란드의 ‘커피 나무 강탈’로 예멘의 커피 독점이 막을 내리면서 재배지가 전세계로 확대됐다. 

귀국한 바바 부단은 마이소르(Mysore State) 찬드라기리 언덕(Chandragiri Hills)에 커피 씨앗을 심었고, 이후 커피 재배지가 인도 전역으로 넓혀졌다. 마이소르는 후에 카르나타카(Karnataka)로, 찬드라기리 언덕은 바바 부단 언덕(Baba Budan Hills)로 각각 바뀌었다.

인도의 찬드라기리(Chandragiri)와 인도 몬순 말라바(Monsoon Malabar),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만델링(Indonesia Sumatra Mandheling). 몬순 말라바는 해풍을 맞고 숙성돼 찬드라기리보다 콩 사이즈가 컸고, 우레탄 골프공을 만지는 것처럼 감촉이 좋았다.  

#1 커피는 뉴크롭(New Crop)인 찬드라기리 아라비카 트리플A(Washed). 테이스팅은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 테스팅에서는 초콜릿과 풋내인 Hay-like, 약간의 흙냄새(Earthy)도 느꼈다. 두 번째 테이스팅에서는 초콜릿과 딸기잼, Nutty(견과류) 맛이 나면서 식으니 자몽(Gratefruit)의 산미를 느꼈다. 세 번째 테이스팅에서는 아몬드와 자두, 초콜릿 맛이 나면서 식으니 처음보다 산미가 강해지면서 풋내도 났다. 단맛은 처음보다 강해 잼(Jam-like)이 연상됐다. 테이스팅 점수는 다음과 같다. 

Aroma 7, Floral 7, Fruit 7, Sour 1, Nutty 7, Toast 7, Burnt 1, Earth 1, Acidity 7, Body 7, Texture 7, Flavor 8, Aftertasting 7, Astringency 1, Residual 1, Soft Swallowing 8, Sweetness 8, Bitterness 1, Balance 7, Defect None(없음). 

3번의 테이스팅 끝내 내린 결론은 찬드라기리에서는 초콜릿과 딸기, 자두, 자몽, 아몬드 맛을 느끼면서 산미보다는 단맛이 좀더 강하다고 느꼈다. 연상되는 색은 갈색(Brown). 찬드라기리를 마시면서 늦은 아침 커피와 함께 모카빵을 먹는 생각이 났다.  

#2 커피는 몬순 말라바 더블A. 이 커피는 해발 1600~1800m에서 재배한 찬드라기리가 계절풍인 몬순이 불어오는 6월부터 9월까지 케랄라(Kerala)의 말라바 해안가(Malabar Coast) 창고에 옮겨져 숙성되면서 만들어진다. 해풍을 맞은 커피 콩은 수분을 흡수하고 사이즈가 찬드라기리보다 커지고 색깔도 녹색에서 옅은 황금색으로 변한다. 맛은 신미가 감소되면서 단맛이 높아진다. 

바바 부단 언덕에서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수확한 찬드라기리는 계절풍인 몬순(Mosoom)이 부는  6월부터 4개월 간 450㎞쯤 떨어진 케랄라(Kerala)의 말라바 해안가(Malabar Coast) 창고에 옮겨져 숙성돼 '몬순 말라바'로 거듭난다. 지도=구글 캡쳐 

인도에서 몬순을 이용한 커피 가공 방법(Monsooned Malabar)을 개발한 이유는 1869년 수에즈운하가 개통되면서 커피 맛이 변했다는 불평 때문이다. 이전에는 인도에서 출발한 배는 희망봉을 돌아 6개월 만에 유럽에 도달했다. 긴 항해 기간 동안 해풍에 콩이 부풀어 올라 자연스럽게 숙성이 되면서 산미(Acidity)가 떨어지고 구수한 맛을 냈다. 유럽인들이 인도 커피를 사랑한 이유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영국까지 거리가 6400㎞나 단축되면서 신맛이 강해지자 원인 분석 끝에 유럽에 수출하기 전 강제로 해풍에 노출시켜 ‘옛 인도 커피’를 만들게 됐다. 

몬순 말라바 생두는 손으로 만졌을 때 마치 우레탄 코팅 골프공을 만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감촉이 좋았다. 생두에서 약간의 흙내음(Earthy)과 함께 지하실에서 나는 눅눅한 냄새(Moldy/Damp), 물파스의 화한 냄새(Medicinal)도 느꼈다.  

테이스팅은 3차례 이루어졌다. 자몽, 아몬드 몰트(첫째날 노트)/아몬드, 자두, 초콜릿, 식으면서 풀내음(Hay-like)과 잼(Jam-like)의 느낌이 강함(둘째날〃)/아로마 밤꽃과 초콜릿, 너트(Nutty), 엿 먹는 느낌(Molasses), 아몬드(셋째날〃).

몬순 말라바의 종합적인 느낌은 산미는 자몽보다 약하지만 자두와 초콜릿이 연상됐다. 특히 몬순 말라바를 마실때는 ‘고소함’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밤꽃의 향긋함과 고구마(Sweet potato), 뻥튀기(Grain)의 구수함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났다.

몬순 말라바를 마시면서 한 겨울 손수레에서 사서 먹는 달콤한 군고구마가 생각났다. 고무마 장수가 손수레에 앉힌 고구마통에 장작을 넣고 고구마를 구울 때는 장작 타는 약간 매운 냄새와 함께 고구마가 익는 구수한 냄새가 주변을 감싸 식욕을 자극한다. 연상되는 색깔은 잘 익은 고구마의 노란색.          

 로스팅한 뒤 인도 찬드라기리, 인도 몬순 말라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만델링(왼쪽부터) 모습.

#3 커피는 만델링. 이 커피 역시 3차례 테이스팅이 이루어졌고, 아로마에서 후추보다 강한 자극적인 향신료(Spices)가 났고, 흙냄새(Earthy)도 풍겼다. 초코릿과 아몬드에 이어 자두와 포도가 연상됐지만 과숙성된(Overripe) 과일을 먹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식으면서 약간 텁텁하고, 덜 정제됐다는 느낌이었다. 시골 골방에서 나는 냄새도 살짝 나는 듯했다. 점수는 다음과 같다.

Aroma 6, Floral 6, Fruit 6, Sour 2, Nutty 8, Toast 6, Burnt 1, Earth 2, Acidity 6, Body 7, Texture 6, Flavor 6, Aftertasting 6, Astringency 1, Residual 1, Soft Swallowing 6, Sweetness 6, Bitterness 1, Balance 7, Defect None(없음). 

만델링이 깔끔하지 하지 않고 흙맛이나 축축한 냄새(Moly/Damp)가 나는 것은 가공법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해 커피를 에티오피아처럼 바싹 말리기에는 자연 조건이 나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농부들은 파치먼트(Parchmen) 또는 헐(Hull)이라고 불리는 속껍질까지 벗겨낸 뒤(Wet-hulled processing) 땅바닥에서 30~45일간 말린 뒤 가공소에 판다. 파치먼트는 젖은 상태에서 잘 벗겨지지 않아 커피콩에 상처가 생기는데, 여기에 땅냄새 등이 스며들어 만델링에서 흙내음이 나게 된다.   

만델링은 마시면서 잘 정돈된 신작로(新作路)가 아닌 사람 손길이 아직 닿지 않는 황토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색깔도 붉은색(Red)이 떠올랐다. 

신진호 커피비평가협회(CCA) 커피테이스터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