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소비 쿠폰 정책,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되기를
2025-07-28
먼저 이번 합의로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해 15%의 관세율을 확정했고, 농축산물(쌀, 쇠고기)의 추가 개방은 제외되었다. 한국은 이에 상응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 중 1500억 달러는 미국 조선업 재건(MASGA) 패키지이고, 나머지는 반도체·에너지·기술 분야에 활용될 예정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미국산 LNG 1000억 달러의 수입 약속도 포함되었다.
이번에 우리가 확보한 15% 관세율은 일본, EU와 동일한 수치다. 일본은 자동차 관세 27.5%에서 15%로, EU는 철강·알루미늄 등 일부를 제외하고 15% 선에서 협상이 마무리됐다. 이는 미국이 주요 동맹국에 대해 보편적 기준선을 적용하는 ‘New Equilibrium’ 전략을 채택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EU와는 이미 90% 이상의 품목에서 관세를 철폐한 FTA가 작동 중이며, 일본은 대규모 기술 이전과 연계된 투자 약속이 포함됐다. 반면 한국은 관세 인하와 함께 막대한 투자자금의 유입이라는 조건을 수용한 셈이다.
이에 대해 해외 언론의 반응은 애매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AP, 로이터, 뉴욕타임즈 등 주요 외신은 이번 협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국은 25% 관세폭탄을 피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미국 중심 무역 질서에 편입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이 단순한 양자 관세 조정 협상이 아니라, 글로벌 통상 질서의 재편 흐름 속에서 한국이 구조적으로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에 더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미국 주도의 ‘투자–관세–공급망’ 틀에 한국 경제가 종속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표현인 것이다.
이처럼 이번 한·미 관세협상은 기대와 경계가 공존한다.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첫째로 수출 전략의 예측 가능성 회복이다. 15%라는 고정 관세율은 자동차와
부품 업체가 가격과 마진 전략을 다시 수립할 수 있게 해주었다. 둘째는 조선, 에너지 분야의 실질적인 일감을 확보한 것이다. MASGA 패키지를 통해 한국 조선업체들이 미국 해군 MRO, LNG선, 해양플랜트 등 수주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는 쌀·쇠고기 등 농민 민감 품목이 개방 대상에서 제외되어 내수 충격을 피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반면 부정적·잠재적 리스크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미 FTA가 무용지물이 되면서, 0%에서 15%로의 상시 전환은 비용의 구조적 상승을 초래한다. 둘째, 우리나라가 투자하기로 한 3500억 달러 중 상당 부분이 미국 내 산업생태계로 흘러들어가, 한국 기업이 확보하는 수익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수 있다. 셋째, 철강·알루미늄 등 일부는 여전히 고율 관세 대상으로 남아, 이를 통한 비관세 장벽을 강화할 경우 새로운 리스크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제는 ‘15% 관세 시대’라는 뉴노멀의 비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이번 관세 조정은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을 통해 법적 효력을 확보했지만, 그 이행 과정에서의 수익 배분 구조, 비관세 장벽 해소, 산업 연계성 확보 등은 여전히 우리 측의 전략적 대응에 달려 있다.

첫째, 조선·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산업이 미국 현지 프로젝트와 연계되도록 하고, 국내 부품과 기술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도록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둘째, 자동차 업계는 관세 비용을 상쇄할 수 있도록 고부가가치 차량으로 전환하고, 소프트웨어·서비스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철강·알루미늄 등 여전히 고율 관세가 적용되는 품목에 대해서는 그린 인증 기반의 단계적 인하 협상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해외 대규모 투자와 국내 투자·고용이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세제와 산업정책의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
관세 15%의 뉴노멀은 피할 수 없지만 우리만 처한 상황이 아니다. 일본, EU 등 주요국들 역시 동일한 조건에 놓여 있다. 누가 더 전략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와 위기가 갈릴 것이다. 관세라는 외부 환경은 이제 상수(常數)로 자리 잡았다. 이를 경쟁력 강화와 시장 재편의 계기로 전환할 수 있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과 실행에 달려 있다. ‘관세 15% 시대’는 새로운 도전이다. 하지만 준비된 국가에겐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