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려 깊지도, 대국민 약속도 지키지 못한 추경예산

코로나19로 위기가정 늘었는데 정부는 소비 부추겨
소상공인 피해 지원도 손실액에 크게 못미쳐 '실망'
2021-07-02 15:28:42
경제정책부 김흥수 팀장
경제정책부 김흥수 팀장

연산군은 주색에 빠져 국사를 소홀히 했고 이로 인해 폐위됐다.

술과 여자에 빠져 지내던 연산군은 채홍사라는 관리를 파견해 각 지방의 아름다운 처녀를 궁궐로 뽑아 오게 했는데 특히 예쁘고, 노래와 춤을 잘 하는 여자를 ‘흥청(興淸)’ 이라고 불렀다. 

연산군이 흥청들과 놀아나다 망했다는 뜻에서 백성들이 ‘흥청망청’이라는 말을 만들어 사용했고, 그 말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일 33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추경예산을 국회에 제출했다. 소상공인의 손실보상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재난지원금 등이 핵심 내용이다. 

흥청망청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생소비지원금(신용카드 캐시백) 예산이 눈에 띈다. 소비자가 2분기에 사용한 신용카드 금액보다 3%이상 더 사용하면 사용금액의 10%를 캐시백해 주겠다는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홍남기 부총리의 ‘신의 한 수’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상생소비지원금의 예산이 1조원이고 10%캐시백이므로 10조원 이상의 소비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대로는 가처분 소득이 높아 소비 여력이 충분한 부유층에게 혜택이 몰릴 수 있고 소득하위 계층은 혜택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서민들이 캐시백 혜택을 받으려면 월평균 100만원 이상을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 흥청망청하지 않으면 정부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오윤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전국민재난지원금 정책에 더해 캐시백 혜택까지 별도로 주면 역진성이 더 커질 수 있다”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은 이것뿐이 아니다. 33조원의 추경 예산 가운데 소상공인의 손실보상을 위해 책정된 예산은 10%에도 못 미치는 3조2500억원에 불과하다. 코로나 기간동안 자영업자들의 대출 증가액은 120조원에 달한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마져 “K 방역은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의 헌신 위에서 만들어졌는데 그 대가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과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폐업률”이라며 여당의 손실보상법안 날치기 처리를 비판했다.

추경 예산을 두고 뒷말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코로나19사태로 위기 가정이 늘고 있는데도 소비를 더욱 늘려야 캐시백을 받을 수 있고, 손실보상 소급적용에 반대하며 소급적용에 준하는 피해지원을 하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탓이다.  

정부 정책의 신뢰는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사례 깊은 행동과 대국민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번 추경예산에는 두 가지 모두 빠졌다. 정부는 전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추경예산을 만들고도 비판만 받는다고 볼멘소리를 하기에 앞서 정책의 신뢰성이 상실한 이유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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