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존재 이유 망각한 금감원

금융기관 업무일정 앞에 무너진 소비자 권리 보호
금융사가 아닌 소비자 보호를 근본으로 삼아야
2021-03-11 10:44:09
김흥수 경제정책부 팀장
김흥수 경제정책부 팀장

금융감독원은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慣行)을 확립하며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 수요자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하지만 농협상호금융의 상도를 벗어난 고객 정보 마케팅 활용을 취재하면서 금감원의 설립 목적이 소보자 보호가 아닌 ‘금융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됐다.      

빅터뉴스는 지난 9일 농협상호금융이 예?적금 만기 도래시 소비자에게 이를 통보해주는 것을 빌미로 소비자로부터 마케팅 활용 동의서를 받아 과도한 마케팅이라는 지적을 했다. 

기자는 금감원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확인해 본 결과 너무도 참담한 답변을 듣게 됐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농협의 과도한 마케팅활용 동의서 수집행위를 지난해 말 인지했고, 이에 대한 시정을 농협 측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농협 측과 협의해서 농협의 업무 일정에 맞춰 개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정확한 개선 시기는 확정할 수 없고 단지 ‘올해 안’이라는 말만 강조했다.

기자가 “어떻게 소비자 권리보호를 뒤로 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물으니, 그는 “금융기관도 나름대로의 업무 일정이 있는데 이를 제쳐두고 소비자 권리보호만 강요할 수 없다”는 황당한 답변이었다.

소비자들은 스팸 문자와 메일, 전화 등에 매일 시달린다. 이런 탓에 금융기관이나 플랫폼 회원 가입을 할 때 마케팅 동의서 서명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농협은 이제껏 ‘예?적금 만기 통보’라는 서비스 제공을 빌미로 소비자에게서 마케팅 활용 동의서를 징구해 왔고, 금감원에 적발되고도 아직까지 시정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시중에 마케팅 동의서 매매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가격은 최하 1만원에서 비싼 것은 5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농협에 예?적금을 신규 개설하는 고객은 만기 알림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최하 1만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목적으로 삼고 있는 금감원이 소비자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 현장을 적발하고도 금융기관의 업무 일정에 맞춘 개선 방침을 밝히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다. 금감원은 설립 목적에 맞게 금융사가 아닌 소비자 보호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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