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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산책] 대리입금이 신종 사채?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더 '심각'
[데이터 산책] 대리입금이 신종 사채?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더 '심각'
  • 송원근 기자
  • 승인 2019.03.19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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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입금 해준 5만원 못 돌려받았어요" 피해 호소하는 미성년 채권자들
우리 사회 신뢰 갉아먹는 행위... 소액사기범 엄정 단죄 통해 '신뢰사회' 세워야
'네이버 지식인'에는 대리입금 후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대처방안을 묻는 글이 계속 올라온다. 사진=네이버 캡처
▲ '네이버 지식인'에는 '대리입금' 즉 돈을 대신 입금해준 후 돌려받지 못했다며 대처요령을 묻는 글이 계속 올라온다. 사진=네이버 캡처

대리입금이란 상대방(을)이 원하는 계좌에 일정 금액을 타인(갑)이 대신 입금해 주는 금전거래 행위다. 줄인 말로 ‘댈입’이라고도 한다.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리입금이 이뤄지는 거래 채널이다. 갑은 거래의 대가로 입금액인 원금과 ‘수고비’라 불리는 이자를 을에게 받는다. 정한 날까지 원리금이 상환되지 않으면 ‘지각비’라는 연체이자가 생긴다. 물론 이자율도 높다. 거래의 청약은 갑이 ‘대리입금 가능’이란 페이지를 만들고 쉽게 검색되도록 해시태그를 붙이는 등의 행위와 을이 ‘대리입금 구한다’는 메시지를 SNS에 올리는 행위로 구분되는데,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거래를 하는 것인데다 계약서를 교환하는 것도 아니다보니, 거래 성사를 위해 을은 다수 개인정보를 갑에게 넘겨 일종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대리입금을 원하는 사람이 을 본인이 맞는지 인증부터 하기도 한다. 넘겨야 할 개인정보는 본인은 물론 부모와 친인척의 전화번호, 신분증, 집주소 등 갑이 채권 추심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여야 한다. 그런데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을은 돈도 못 빌리고 개인정보만 넘긴 꼴이며 그 개인정보가 어떻게 유통될지는 갑만이 안다.

이렇게만 보면 대리입금은 SNS 보편화 시대가 잉태한 신종 사채다. 하루 이자율이 수십 퍼센트에 달하는 고리대금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리입금이 언급된 트위터의 트윗을 보면 3천원, 5천원, 만원 등 요구금액이 소액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거래를 원하는 이들도 대부분 10대 청소년들이다. 아무리 용돈 받아 생활하는 10대라지만 이 정도 소액마저 없는 것인지 트윗에는 “제발 오늘 중 5천원만 대리입금해주세요” 같은 메시지가 넘쳐난다. 심지어 “3만7400원을 입금해달라”며 백원 단위까지 밝히는 트윗도 있다. “굿즈 사야 해요”, “데이터 충전이 급해서” 등 대리입금은 여가생활에 필요한 급전을 청소년들이 손쉽게 조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로 활용된다.

앞서 개인정보를 넘기고도 돈을 구하지 못한 을의 피해를 언급했으나, 현재까지 SNS에서는 돈을 입금해 주고 나서 돌려받지 못했다는 갑의 호소가 훨씬 더 많다. “불쌍해보여서 입금해줬더니 받고나서 연락이 끊겼다. 내 전화번호를 차단한 것 같다”, “처음에 3만원 빌려줬는데, 계속 빌려달래서 30만원을 빌려주고 못 받고 있다”며 당황과 울분이 섞인 하소연을 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인에는 돈을 떼인 갑이 “대리입금 자체가 불법이라서 돈을 돌려받을 수 없는 건가요”라는 문의가 수두룩하다. 기초적인 법률지식조차 결여한 것으로 보아 피해를 입은 갑의 대다수는 10대 청소년들로 추정된다.

◇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도 여전한 '저신뢰사회'... 소액사기 가볍게 보지 말고 단죄해야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 대학 교수는 ‘트러스트’란 책에서 국가 번영을 이루기 위한 핵심요소로 ‘신뢰’를 지목했다. 신뢰가 부족한 사회는 계약과 거래에 수반되는 비용이 늘어나 경쟁력을 해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을 신뢰의 범위가 가족이나 혈연 등으로 한정된 저신뢰사회 중 하나로 평가했다. 대리입금 사기가 횡행하는 것은 1995년에 출간된 이 책의 지적이 24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방증이 된다.

사기 피해를 당한 갑이 대리입금을 하게 된 동기는 이자를 받겠다는 경제적 유인이 아니라 온라인 네트워크에서 얻어진 친밀감 또는 신뢰가 먼저였을지도 모른다. ‘먹튀’를 행한 을은 수만원, 수십만원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적 신뢰를 파괴한 것이다. 피해자는 대부분 미성년이거나 갓 스물을 넘긴 세대다. 사기피해액 규모를 봤을 때 경찰 등 공권력이 구제할 가능성도 적다. 고작 몇 만원 떼먹는 게 대수겠냐며 타인과의 신뢰를 하찮게 여기는 가해자들의 저질스러운 자기합리화도 엿보인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게 됐을 때 대리입금 피해 또는 가해라는 기억이 어떤 방향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까.

중고거래로 가장 유명한 한 인터넷 카페에서도 소액 사기 사건이 수시로 발생한다. 신고 후 몇 달이 지나서도 경찰서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단다. 당연하게도 한 번 피해를 입은 사람은 중고거래에 쉽게 다시 나서지 못한다. 소액사기범에 대한 단죄가 그래서 중요하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도 여전한 저신뢰의 굴레는 권력형 비리, 최악 경제성장률 같은 ‘외부 뉴스’만이 아니다. 국민 개개인을 저신뢰의 직접 당사자로 만든 생활적폐, 이것부터 걷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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