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의 커피노트> 가을 국화밭 소환한 하와이 코나 파카마라

파카스와 마라고지페 교배종…향미 재스민, 국화, 체리사탕
신진호 기자 2023-05-10 19:29:42
하와이 코나 모나크 에스테이트(Monarch Estate) 농장에서 한 농부가 잘 익은 커피 체리만 선별해서 손으로 따고 있다. 핸드 피킹(Hand Picking)은 고된 작업이지만 최상품의 커피를 수확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사진=모나크 에스테이트 페이스북 캡쳐 

저는 파카마라(Pacamara)라고 해요, 미생(未生)이죠. 생산성도 좋고 맛도 좋지만 유전적인 결함으로 품질 유지가 어렵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저도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처럼 완생(完生)을 꿈꾸죠.

저희 집안은 다문화 가족이에요. 티피카 계열의 마라고지페(Maragogipe) 할아버지는 풍채가 좋고, 기품이 있으셨죠. 사람들은 이를 향미(Flavor)가 좋다고 표현해요. 하지만 몸이 허약해 병에 자주 걸리셨대요.

버번(Bourbon) 타입의 파카스(Pacas) 할머니는 아주 다부지셨다고 해요. 키가 작았지만 따가운 햇볕이나 가뭄, 강한 바람 등에도 아랑 곳 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셨대요. 

엘살바도르커피연구소(Instituto Salvadoreño de Investigaciones del Café, ISIC)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나면 키가 크지 않으면서 향미가 좋은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며 연구를 수행했대요. 드디어 아버지가 1958년 태어나셨죠. 아버지는 생두가 크고 향미가 훌륭한 할아버지의 유전적 특징과 함께 할머니 혈통을 이어받아 줄기가 튼튼하고 마디 사이 간격도 좁아 자식(생산성)도 많이 낳으셨대요. 그래서 아버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름을 조합한 파카마라가 됐죠.

하지만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닮아 병충해에 약하세요. 게다가 유전적으로 불안해서 같은 환경에서 재배한다고 해도 해마다 품질이 들쭉날쭉해서 커피 농부들이 속앓이를 많이 한 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집안은 향미가 탁월해 중미 국가의 커피 품평회인 컵 오브 엑설런트(Cup of Excellent)에 나가 상위권을 휩쓸고 있죠.

11파운드(약 5㎏)씩 소분된 하와이 코나 엑스트라 팬시 파카마라 생두. 포장지 표면에 품종과 가공·건조방법, 수확·도정날짜, 농장, 향미(Flavor) 등이 자세히 표기되어 있다. 

저는 부모님 곁을 떠나 하와이 코나 모나크 에스테이트(Monarch Estate) 농장으로 이민을 갔죠. 커피 농장주는 제가 병충해에 약한 것을 알고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셨죠. 하와이 코나 지역은 미네랄이 많은 화산 토양이라 제가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죠. 비도 알맞게 오고, 오후가 되면 구름이 햇볕을 가려줘 너무 덥지 않죠. 이렇게 곱게 자라니 제 몸에서 좋은 향미가 날수 밖에요. 코나는 귀하지만 저는 최상급 등급을 받은 코나 엑스트라 팬시 파카마라라 더 귀하죠.   

다음이 저에 대한 평가예요.   

Aroma 9, Floral 9, Fruit 9, Sour 1, Nutty 8, Toast 8, Burnt 1, Earth 1, Acidity 6, Body 9, Texture 9, Flavor 9, Aftertaste 9, Astringency 1, Residual 1, Soft Swallowing 9, Sweetness 8, Bitterness 1, Balance 8, Defect None(없음). 

하와이 코나 파카마라 생두(왼쪽)와 원두.
하와이 코나 파카마라 생두(왼쪽)와 원두. 향미(Flavor)가 장미, 재스민, 국화, 체리사탕 등으로 풍성하다. 

사람들이 핸드드립하기 위해 저를 분쇄하면 식욕을 자극하는 빵 굽는 냄새와 함께 장미, 재스민의 아로마가 핀다고 해요. 향미는 여기에 더해 국화(Chamomile)의 맛과 함께 체리사탕을 먹는 듯한 단맛도 느낀다고 해요. 전문가들이 평가한 저의 향미는 건포도(Black& Red Currant), 크림(Cream), 당밀(Molasses)이네요. 

저를 인터뷰하며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저의 색깔을 연한 밤색(Brown)이라고 표현하시네요. 핸드드립 후 잔에 담긴 색이 밤색(Chestnut Brown)보다 옅은 색을 띠면서 맛도 부드러워 ‘라이트(Light)한 느낌을 받으셨다고 하시면서요.

또한 저를 음미하면서 눈이 부실 정도로 하늘이 맑고 높은 화창한 어느 가을 국화밭을 걸으면서 느꼈던 여유로움과 행복감도 느끼셨대요. 그러니 제가 귀하게 대접받는 이유를 아시겠죠? 

신진호 커피비평가협회(CCA) 커피테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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