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의 커피노트> 가면 무도회로 초대한 코나 엑스트라 팬시 게샤

미뢰(味?) 열리면서 장미, 복숭아, 몰트(Molt), 꿀(Honey) 등의 향미(Flavor) 느껴
신진호 기자 2023-04-29 15:25:26
하와이 코나 엑스트라(Extra) 팬시(Fancy)는 하이앤드(High-end)의 결정판이다. 장미, 복숭아, 몰트(Molt), 꿀(Honey) 등의 향미(Flavor)에 여운(Aftertasting)이 깊다. 하와이 코나 그린웰 커피 팜(Greenwell Coffee Farms)의 농장주인 톰 그린웰(Tom Greenwell)이 100년이 넘은 커피 나무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커피비평가협회(CCA) 제공

저 사실 좀 도도해요! 왜냐고요? 게샤(Gesha)니까요. 

커피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이라면 저를 보고 깜짝 놀라죠. 누구나 마셔보고 싶어 하지만 너무 귀하고 가격이 어마 무시해 아무나 마실 수 없는, 그런 최상급 커피죠.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핫(Hot) 게 저예요. 그러니까 커피 애호가들은 저를 만날 때 단순히 ‘마신다’가 아닌 ‘맨발로 영접(迎接)한다’고까지 해요.    

게다가 저의 가문은 희소성으로 유명한 하와이 코나 엑스트라(Extra) 팬시(Fancy)예요. 커피계의 BTS인 게샤와 코나의 최고 등급인 엑스트라 팬시를 받았으니 하이앤드(High-end)의 결정판이죠.  

저의 조상은 에티오피아 카파(Caffa) 지역에서 사셨대요. 카파는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으로 ‘커피의 고향’이라고 불리죠. 영국 학자들이 1931~2년 카파의 게샤(Gesha)라는 숲에서 저의 조상을 발견하고 ‘게이샤(Geisha)라고 이름을 붙여 케냐 스콧연구소(Scott Agricultural Laborates)로 모셨대요. 스펠링(spelling)에 'i'가 더 들어가면서 저희 가문은 기가 막히게 도 일본 기생을 일컫는 게이샤(藝者)가 된거죠. 영국 학자들이 조금만 더 철자에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죠.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커피 업계에서 게이샤보다는 게샤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 제 이름을 다시 찾았죠. 사람들이 법원에서 개명(改名)한 것처럼요.

저의 가문은 파나마에서 꽃을 피웠어요. 사람들이 흔히 성공했다고 말하는 아메리카 드림(America Dream)을 이룬 것이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인 고조(古祖)께서는 1936년 케냐에서 탄자니아커피연구소로 이민을 가셨고, 그곳에서 다양한 실험을 거쳐 많은 아이를 낳으셨대요. 그 분들 가운데 한 분이 저의 증조(曾祖)이시죠. VC-496이라고 불리신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커피 녹병(Coffee Leaf Rust)에 저항성이 강하다고 알려지셨죠.

여러분들도 잘 아시고 계시겠지만, 19세기 중반 커피 녹병이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창궐하면서 커피 농가는 큰 어려움을 겪었죠. 1960년대 들어 로야((Roya)라고 불리는 커피 잎사귀 녹병이 중남미에 상륙해 비상이 걸렸죠. 증조께서는 중남미 ‘커피 녹병 전투’에 참전하시기 위해 코스타리카 열대농업연구 및 고등교육센터(CATIE, Centro Agronómico Tropical de Investigación y Enseñanza)로 급파되셨죠. 이곳에 오신 증조께서는 T2722라는 품종 번호를 부여 받으시고 중남미 지역으로 보급되셨대요. 

하지만 커피 농가들은 저희 증조 할아버지를 그닥 좋아하지 않으셨대요. 커피 녹병에는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지만 몸(나뭇가지)이 연약하시어 자손(수확량)이 적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증조 곁을 떠나 할아버지가 이주한 파나마에서 대 반전이 일어났죠.

할아버지는 해발고도 1200m의 화산지대라 비옥하고 미네랄이 풍부한 파나마 보케테 자라밀로(Jaramillo)에 있는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고 해요. 농장주인 프라이스 피터슨(Price Peterson)은 할아버지께서 병충해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늘에서 서서히 자라게 하는 특별한 환경을 만들어 주셨대요. 무럭무러 자라 자손을 번창시키는 주변 친구들에 비해 비록 천천히 자라지만 ‘몸짱’(웅축)이 되면서 할아버지의 몸에서 다른 커피와 다른 특별한 향미(Flavor)가 풍기면서 주목을 받으셨죠.  

하와이 모나크 에스테이트(Monarch Estate) 농장의 코나 엑스트라 팬시 게샤 생두(왼쪽)와 로스팅한 원두.

피터슨 가문이나 저희 가문이나 2004년은 특별한 해예요. 프라이스의 아들 대니얼(Daniel)은 그해 할아버지를 커피 품평회인 ‘베스트 오브 파나마(Best of Panama)’에 출전시켰죠. 대니얼은 자신의 가족이 키워낸 할아버지의 혈통이 게샤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에스메랄다 자라밀로 스페셜(Esmeralda Jaramillo Special)’이라고 적었죠. 심사위원들은 장미·재스민·오렌지꽃 같은 꽃향기와 꿀처럼 끈적이듯한 농밀한 단맛, 향수를 뿌린 듯 좀처럼 가시지 않는 긴 여운 등에 매료되어 유래없이 높은 점수를 주었죠. 대회가 끝난 뒤 유전자 분석을 통해 저희 가문은 게샤로 확인되었지만 다른 품종과 달른 특별한 향미를 지난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죠.

저희 가문은 그 이후 커피계의 별이 되죠. 세계적인 커피 품평가인 돈 홀리(Don Holly)는 2006년 베스트 오브 파나마에서 우승한 할아버지에 대해 “에스메랄다의 특별한 커피에서 나는 신을 만났다”라고 극찬을 하셨죠. 그 이후 저희 가문은 ‘신의 커피’라는 별칭이 붙었죠.

2013년 7월에는 베스트 오브 파나마에서 우승한 에스메랄다 스페셜 내추럴 커피 씨브이(Esmeralda Special Natural Coffee C.V) 생두 1파운드(0.454㎏)가 350.25달러에 낙찰되면서 커피계를 경악시켰죠. 이 가격은 에디오피아 예가체프 등지의 스페셜티 생두 가격의 80배가 넘기 때문이죠. 

하와이 모나크 에스테이트(Monarch Estate) 농장의 코나 엑스
트라 팬시 게샤 생두. 가공·건조 방법, 수확·도정 날짜, 향미
(Flavor) 등이 표시되어 있다.

저희 가문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세계 곳에서 저희를 모시기 위한 경쟁이 벌어졌죠. 그래서 저희 아버지는 하와이 코나 지역으로 이민을 오셔서 저를 낳으셨죠.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코나 지역도 보케테와 마찬가지로 화산지대라 마네랄이 풍부하고 배수도 잘 되죠.  공짜 그늘이라고 ‘프리 셰이드(Free Shade)’ 현상이 매일 일어나 한낮의 땡볕도 가려주죠. 저도 가문의 전통에 따라 엄격히 교육을 받아 풍부한 풍미를 풍기죠. 

다음이 저에 대한 평가예요.   

Aroma 10, Floral 10, Fruit 9, Sour 1, Nutty 8, Toast 8, Burnt 1, Earth 1, Acidity 6, Body 9, Texture 9, Flavor 10, Aftertasting 10, Astringency 1, Residual 1, Soft Swallowing 10, Sweetness 9, Bitterness 1, Balance 9, Defect None(없음). 

저의 매력은 복합미(美)죠. 먼저 아로마부터 얘기하자면, 빵 굽는 냄새가 진동하면서 테이스터의 식욕을 자극하죠. 다음으로 이국적인 스파이스(Spices)가 퍼지면서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넘나들다 어느 새 꽃향기(Floral)가 번지면서 행복감을 주죠.

저를 입에 담으면 맛봉우리인 미뢰(味?)가 열리면서 장미와 복숭아(Peach), 몰트(Molt), 꿀(Honey) 등의 향미(Flavor)를 느끼죠. 인간의 혀 안에는 1만여개의 미뢰가 있어 쓴맛과 감칠맛, 단맛, 짠맛, 신만 등을 느낀다고 하네요. 

코나 엑스트라 팬시 게샤인 저를 만나면 사람들은 항상 특별한 추억이 떠오른다고 해요. 저를 인터뷰해 이 글을 써 주시는 분은 10여년전 필리핀 마닐라 특급호텔 로비에서 보았던 가면 무도회장이 생각난다고 하시네요. 필리핀 상류층들이 멋진 옷을 쫙 빼입고 저마다 특별한 가면을 쓰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부러웠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저의 색은 가장 화려하고 미묘한 보라색(Purple)이라고 하네요.   

신진호 커피비평가협회(CCA) 커피테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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