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의 커피노트> 베토벤은 왜 원두 60알을 세어 커피를 마셨을까?

커피 결점두(豆) 아로마, 향미에 큰 영향
미성숙 퀘이커 10%만 있어도 쓰고 떫어
좋은 커피 선별해야 사유(思惟) 방해 안 받아
신진호 기자 2023-03-23 20:47:08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항상 작품을 쓰기 전 모닝커피용으로 타거나 벌레 먹지 않은 깨끗한 원두 60알을 손수 세어서 추출할 정도로 커피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그림은 유사랑 화백이 에소프레스로 그린 베토벤. 그림을 제공한 유 작가는 커피를 물감삼아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 '커피 작가'로 명성이 높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커피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그는 항상 작품을 쓰기 전 모닝커피용으로 타거나 벌레 먹지 않은 깨끗한 원두 60알을 손수 세어서 추출했다. 손님이 와서 커피를 대접할 때도 그는 1인분용으로 60알씩을 세었다. 그래서 커피에서 60은 ‘베토벤 넘버(Number)’라고 불린다. 원두 60알은 핸드드립할 때 1인분 커피를 내릴 수 있는 10g정도가 된다. 

그렇다면 왜 베토벤은 커피 원두를 손수 세었을까? 커피는 베토벤에게 창작의 자양분이었다. 그가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원두는 나에게 60가지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고 전해질 정도다. 베토벤은 커피의 아로마(Aroma)와 향미(Flavor)를 즐기며 작품에 몰입했다. 그러니 그에게 커피는 단순한 기호품 이상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썩거나 탄 결점두(豆)가 섞여 있어 맛이 떨어진다면? 청각이 상실했어도 교향곡을 작곡할 정도로 뛰어난 감각을 지닌 베토벤은 이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베토벤은 기꺼이 결점두를 가려내는 수고를 기쁘게 수행하면서 깨끗한 커피에서 피어나는 풍성한 아로마와 향미를 즐겼다. 

베토벤 넘버를 기억하면서도 우리가 손수 원두를 고르지 않고 아로마와 향미를 즐길 수 있게 된 시기는 1920년대 이후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호황기에 접어들어 커피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기호품으로 성장하면서 뉴욕에 아라비카 거래소가 등장했다. 뉴욕거래소는 커피에 등급을 매겨 차등 거래를 했다.  

결점두가 커피 아로마와 향미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멕시코 베라크루(Veracuruz) 파티마(Fatima) 농장에서 생산한 카투라(Catura)로 테이스팅을 해봤다. 

카투라(Catura)로 테이스팅한 뒤 결점두를 따로 모아 담았다. 결점두는 밤색의 원두와 달리 옅은 색을 띄어 구별이 쉬웠다.
 멕시코 베라크루(Veracuruz) 파티마(Fatima) 농장에서 생산한 카투라(Catura)를 로스팅한 뒤 결점두를 따로 모아 담았다. 결점두는 밤색의 원두와 달리 옅은 색을 띄어 구별이 쉬웠다.

먼저 생두를 로스팅한 뒤 결점두를 선별했다. 결점두는 밤색의 원두와 달리 옅은 색을 띄어 구별이 쉬웠다. 결점두를 벌레 먹은 것과 곰팡이 핀 것으로 나누었다. 벌레 먹은 결점두는 원두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검은 점이 박힌 것으로 보는데, 겉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지만 잘라보면 벌레가 파먹어 속이 비어 있었다. 곰팡이가 핀 원두는 표면에 얼룩이 졌거나 일부가 썩어 없어진 경우도 있었다.

카투라 결점두(왼쪽)는 쪼그라든 모양이거나 일부가 썩어 없어지는 등 매끈한 유선형의 일반 생두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곰팡이 핀 카투라(중간)를 로스팅하면 얼룩이 졌거나 썪어 검은 부분이 드러난다. 벌레 먹은 생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로스팅하면 검은 점으로 보인다. 

결점두를 골라낸 깨끗한 원두와 벌레 먹은 원두, 곰팡이 핀 원두 등 3개로 나누어 테이스팅을 했다. 먼저 아로마에서 현격한 차이가 났다. 깨끗한 원두는 꽃향(Floral)과 과일(Fruit)향 등이 향기롭게 피었지만 벌레 먹은 원두는 고무 냄새(Rubber)가 강하게 올라왔다. 곰팡이 핀 것 또한 고무 냄새와 함께 찌든 기름 냄새도 났다.

결점두를 골라낸 깨끗한 원두(왼쪽부터)와 벌레 먹은 원두, 곰팡이 핀 원두 등 3개로 나누어 핸드드립으로 내렸다. 겉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테이스팅을 하면 아로마와 향미에서 현격한 차이가 났다. 

향미도 확연히 구분됐다. 무결점 원두를 마셨을 때는 허니(Honey)와 재스민, 장미(Rose) 등이 느껴지면서 여운(Aftertaste)이 길어지고 기분이 상쾌했다. 하지만 벌레 먹은 커피는 볏짚(Hay-like) 우려낸 맛과 기분 나쁜 쓴맛이 강하게 올라왔다. 곰팡이 커피 또한 지하실에서 올라오는 축축한 냄새와 눅눅한 맛(Moldy/Damp)이 강해 더 이상 테이스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였다.  

커피비평가협회 박영순 회장은 “정상 원두 사이에 결점두가 섞여 있는 것을 ‘얼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벌레 먹거나 곰팡이 핀 생두는 성분이 거의 없어 메일라드(Maillard) 반응과 캐러멜반응(Caramelization)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색깔이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미성숙 생두인 퀘이커(Quaker) 또한 커피의 향미에 영향을 끼친다. 마리안 헬레나 샨스 라벨로아(Mariane Helena Sances Rabeloa) 브라질 라블라스 연방대학(Federal University of Lavras) 농업공학과(Agricultural Engineering) 교수 등은 2021년 ‘음식화학(Food Chemistry)’ 저널(342호)에 ‘퀘이커 빈이 스페셜 커피의 감각 특성과 휘발성 성분에 끼친 영향’에 대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무작위로 브라질 민티키라 데 미나스(Mantiqueira de Minas) 지역 아라비카 원두를 선택한 뒤 광학 전자 선택기(optical electronic selector)로 미성숙 결점두(immature defects)를 선별했다. 연구진은 무결점 원두만 골라 컨트롤(Control) 그룹으로 로스팅했고, 결점두는 12분 로스팅 한 뒤 컨트롤 그룹 색깔인 밤색과 가까운 정도에 따라 3그룹으로 분류했다. 즉 ▲컬러(Color)1 그룹,  밤색 퀘이커(Brownish Quaker) ▲컬러2 그룹, 밤노란 퀘이커(Brown Yellow Quaker) ▲컬러3 그룹, 노란 퀘이커(Yellow Quake)로 나누었다. 연구진은 65개 원두를 담은 컵에 몇 개의 퀘이커가 들어가야 향미와 휘발 성분에 영향을 끼치는 그룹별로 분석했다. 

컬러2그룹 감각 속성(sensory attributes) 평가 결과 퀘어커 콩 7개와 10개, 13개, 16개가 든 커피에서 쓴맛과 떫은맛이 났다. 퀘이커 콩이 0개인 것과 1개, 4개 든 커피는 단맛과 신맛(Acidity), 바디(Body)감은 물론 여운(Aftertaste)을 느낄 수 있어 전체 점수(Final score)를 낼수 있었다. 이에 따라 한 컵에 7개 이상의 퀘이커가 있는 원두에서 쓴맛과 떫은맛이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픽=저널 Food Chemistry 342호(2021) 캡쳐

 

컬러3그룹의 아로마(왼쪽)와 향미(Flavor) 분석 결과 퀘이커 농도가 낮을 때는 초콜릿이 지배적이었지만 농도가 높을 때는 그린/미성숙 과일(Green/Immdture Fruit)에 대한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래픽=저널 Food Chemistry 342호(2021) 캡쳐

실험결과 컬러1그룹은 25개 콩이 들어간 커피도 쓴맛과 떫은맛(Astringency)에 영향을 주지 않아 퀘이커 콩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컬러2와 컬러3그룹은 65개 원두 가운데 각각 7개(10.76%) 이상 퀘이커가 들어가면 쓴맛과 떫은맛 등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났다. 평가는 Q-등급(Q-graders)으로 인증된 5명의 패널이 수행했다. 

커피 로스팅 과정에서 수많은 휘발성 화합물을 생성하는데, 퓨란족(27.8%)과 피라진족(22.2%)이 주류를 이룬다. 퓨란족은 과일향과 카라멜향 등이 나는데, 컨트롤 커피와 컬러1 그룹에 많았다. 피라진족은 쓰고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데, 그룹2와 그룹3그룹에 많았다. 그래픽=저널 Food Chemistry 342호(2021) 캡쳐

휘발성 화합물질도 차이가 났다. 로스팅한 원두는 휘발성 화합물을 형성하는데, 이 중 퓨란족(Fura Group, 27.8%)과 피라진족(Pyrazine Group, 22.2%)이 주류를 이룬다. 탄수화물을 분해할 때 나오는 퓨란족은 과일향과 카라멜향 등이 나는데, 컨트롤 커피와 컬러1 그룹에 많았다. 포도당과 아미노산의 반응에서 나타나는 피라진족은 쓰고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데, 그룹2와 그룹3그룹에 많았다. 

단맛이 나는 수크로스(Sucros) 함량은 성숙한 콩이 미성숙한 콩보다 높았다. 

이렇듯 퀘이커 등 결점두는 떫은맛과 쓴맛 등을 유발해 스페셜 커피를 마시면서 느끼는 행복감과 사유(思惟)를 멈추게 한다. 좋은 커피를 선별해서 마셔야 하는 이유다. 

신진호 커피비평가협회(CCA) 커피테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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