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 작가 이규환 “구광모 회장에게 억울함 알리고 싶다”
색동 작가 이규환 “구광모 회장에게 억울함 알리고 싶다”
  • 김두윤 기자
  • 승인 2021.11.1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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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저작권 침해 주장하면서 12년째 법적분쟁…청와대 천막 노숙 시위
LG는 사건 끝났다는데 사실은 증거 위조 혐의로 재심만 10년째 진행중
집앞 시위서 구광모 회장만 "춥지 않느냐" 위로…"아랫사람들이 진실 가려”
'색동 작가'로 유명한 이규환안젤리 작가가 "LG 저작권 침해로 피해를 봤다"며 청와대 인근에서 천막 노숙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규환안젤리 작가가 청와대 인근에서 농성하며 펼쳐 놓은 여러 가지 항의 피켓.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재벌기업과의 법적공방, 재벌기업의 갑질과 횡포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주위에선 들려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니 포기하라"는 말뿐,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잊혀지는 사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늘상 반복되는 '을'들의 한숨이다.

이규환안젤리 작가는 '색동 작가'로 불린다. 지난 2005년 청계천 색동벽화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시 색동 미사제대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백의 민족을 상징하는 하얀 바탕 위에 색동과 한국의 하늘색의 쪽빛을 담은 색동 미사제대는 "VERY GOOD(최고)"이라는 교황청 신부들의 감탄사를 자아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작업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고 있다. 창작의 열정이 가득했던 그의 작업실은 현재 두 다리 펴기도 힘든 작은 천막으로 변했고 손에는 붓대신 ‘LG 갑질+적폐보고서'와 항의 피켓이 들려있다. 지난 7월 한여름 청와대 인근에 부려놓은 천막은 입동(立冬)이 지난 지금에도 접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각종 항의 피켓이 천막을 병풍처럼 감싸면서 초겨울 칼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항의 피켓에는 저작권 재판 판결에 대한 부당함, 법조인 인맥 구도, LG와 관련한 각종 의혹들이 빼곡이 적혀있다.

이규환안젤리 작가는 2008년 LG전자에 색동, 삼베 직조 문양을 응용한 시안을 보냈다

그림밖에 몰랐고 색동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꿈을 키웠던 그가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은 LG전자와의 저작권 분쟁 때문이다.

이 작가는 지난 2008년 LG전자에 자신의 디자인을 제안했고 LG 요청에 따라 색동 문양과 삼베 직조 문양을 응용한 냉장고 등 제품 시안을 보냈지만 LG의 답신은 없었다.

이 작가는 같은해 9월 휴대폰을 고치러 간 LG전자 매장에서 자신의 디자인과 유사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각 LG에 항의했지만 LG는 해당 디자인이 이미 2008년 1월 출원하고 4월에 의장 등록됐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 작가가 직접 특허청에 확인해본 결과, 해당 디자인은 2008년 4월에 출원하고 8월에 등록됐다. LG전자 측이 거짓해명을 한 셈이다. LG전자 디자인팀이 이 작가 작업실을 방문한 것은 2008년 2월이었다.

이 작가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009년 1심과 2010년 2심은 모두 LG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작품의 독창성 없다"는 LG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2심은 아이디어 도용을 일부 인정했지만 이를 저작권 침해로 규정한 판례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상고심은 아예 심리불속행으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 작가는 "LG의 주장대로 독창성이 없다면 왜 자신들은 직조 문양 특허(의장등록)를 냈느냐"고 반문하면서 “미술 저작권 사건임에도 어문 저작권 사례가 적용됐는데, 이는 미술대회 판단 기준을 백일장, 즉 글쓰기 대회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1심 당시 작가는 미술 저작권의 대표적인 판례인 히딩크 넥타이 판례를 주장하고 LG는 어문 저작권 판례를 주장했다.

그는 이어 "아이디어 도용을 인정하며 판례를 이유로 침해를 인정하지 않는 2심도 이해할 수 없다"며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데 대한민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규환안젤리 작가가 색동으로 꾸민 시위 일지를 설명하고 있다. '색동작업하러 집에 가고 싶다'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LG전자는 사건이 법적으로 마무리가 됐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작가가 공문서 위조 혐의로 재심을 청구해 2012년 법원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당시 LG 특허부장에 받은 자료를 법정에 제출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 자료의 모양이 까맣게 바뀌어 있었다"며 "법을 수호하는 법정 안에서 증거가 조작됐다는 말인데도 재심 결론이 10년이나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무서 위조 문제를 제기하자 LG는 오히려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시위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하고 명예훼손 형사 소송을 제기하면서 2차 가해를 가했다"며 "형사 소송은 서부지검에서 중앙지검, 다시 평택지청으로 이동하면서 담당 검사만 몇명이 바뀐지 모르겠고 결국 약식기소로 벌금 700만원이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벌금형을 거부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이규환안젤리 작가가 자신의 억울함을 담아 만든 책.

이 같은 억울함과 법원의 공정성에 대한 실망감으로 1인 시위에 나서게 됐고 결국 청와대 앞까지 오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작가는 "그림 밖에 몰랐는데 일을 겪으면서 이번 사건이 나 자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LG 저작권 문제는 갑질과 적폐의 한 부분이고 이건 대한민국 적폐의 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구광모 LG그룹 회장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 작가는 "2010년 겨울 촛불하나 들고 1인 시위하는데 그 집 사람중에서 구 회장만이 다가오더니 겨울인데 '춥지 않느냐'고 위로했다"면서 "구 회장은 따뜻하다. 그 아랫사람들이 진실을 감추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억울함을 담은 책을 알리기 위해 구 회장에게 우편으로 보냈지만 전달이 안됐다고 한다.

이 작가는 "텐트에서 자는 것이 너무 힘들고 날씨도 춥다"며 "하루 빨리 사건이 해결돼 다시 색동 작업을 하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최근 세계속 'K-컨텐츠' 한류 열풍이 거세다. BTS에 이어 오징어게임이 공전의 히트를 쳤다. 'Feel the Rhythm of Korea(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등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한국 홍보 영상이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K콘텐츠 강화를 위해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치열한 고뇌속에 만들어진 작가의 창작물과 저작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면 정부의 이같은 노력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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