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황진
<서평>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황진
  • 신진호 기자
  • 승인 2021.07.1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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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로 사행길 나서 침략 상황 정탐 후 대비
일본군에 ‘오니(도깨비)’로 불릴 만큼 두려움 대상
백성들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황진’ 칭송
2차 진주성 전투서 중과부적 일본군과 맞서다 산화

임진무쌍 황진/김동진/교유서가

‘임진무쌍(壬辰無雙) 황진’

책 제목이 생소했다.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에서 황진과 대적할 상대가 없었다는 도발적 선언이 선뜻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하면 우리는 남해를 지킨 이순신과 행주대첩의 권율, 진주성 전투의 김시민을 떠올린다. 하지만 황진이라는 이름은 낯설다.

작가 김동진은 『1923년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에서 김상옥과 김시현, 이태준, 황옥 등 우리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의열단 단원을 부활시킨 것처럼 또다시 임진왜란의 영웅, 황진을 『임진무쌍(壬辰無雙) 황진』에서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책은 한마디로 흥미진진하다. 『조선왕조실록』 『징비록』 『난중잡록』, 『강한집』 『국조보감』 등 사료에 근거해 황진의 삶을 추적하면서 사료에서 채워지지 않는 팩트와 팩트 사이의 빈 공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웠다.

책에서 기록한 황진의 삶은 1590년 3월 통신사로 일본에 가게 되면서부터 1593년 6월28일 진주성에서 마지막으로 눈을 감을 때 3여 년간으로 짧지만, 온몸을 던져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살신성인의 정신이 그 누구보다 강함을 알 수 있다. 

황진은 ‘知彼知己 百戰不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손자병법』을 실천한 지장(智將)이면서 용장(勇壯)이었다. 

5촌 당숙인 황윤길을 따라 통신사 호위무관으로 사행길에 나선 황윤은 일본의 침략 준비 상황을 정탐하고 대응할 방법을 강구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준 은사금도 일본도 2자루를 사는데 썼다.

조총수들은 한 줄에 10명씩 30명이 세 줄로 섰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탄환을 장전했다. 지휘관이 “웃테(쏴)!”라고 외치자, 1열이 사격하고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나무판 과녁에서 파편이 어지럽게 튀었다. 이어 2열과 3열이 차례로 앞으로 나와서 쏘고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한 번 더 연속 사격을 반복했다. 두꺼운 나무 과녁이 어느새 조총 탄환을 맞고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51쪽)
 
그 무렵 황진은 오랫동안 여행을 함께한 대마도 호위무사들과 제법 친해졌다. 황진은 그들로부터 왜검술을 배우고 싶었다. 그는 매일 아침 대마도 무사들에게 일본도를 쓰는 법을 보여달라고 하고는, 그대로 해봤다. 황진은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을 하루 종일 삼나무 목검을 들고, 왜검법을 익혔다.(56쪽)

그들은 네 개의 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부대는 조총수들이 세 줄로 제일 앞에 서 있고, 그 뒤에 궁수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조선의 창보다 훨씬 긴 장창으로 무장한 보병(이시가루)들이 사각 밀집 대형을 형성해 그 뒤를 받쳤다. 창기병이 전체 대형의 양 측면을 지켰다. 황진은 그들의 일사불란함과 빠른 속도에 놀랐다. 지휘부가 깃발과 북소리로 명령을 내렸고, 전령 기병들이 부대 사이를 빠르게 오가며 연락을 취했다. 병사들은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총과 활 사격을 퍼부었고, 이어서 보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돌격했다. 그들은 조선의 해안가에서 노략질이나 일삼던 도둑 떼가 아니라, 전국시대 100년 전쟁을 통해 탄생한 막강한 정규군이었다.(70쪽) 

황윤길은 일본의 침입에 대비해야 한다고 보고했지만 선조는 이를 부정한 김성일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어전 회의 결과를 듣고 황진은 크게 충격을 받지만 전라도 동북현감에 부임한 뒤 일본 침략에 대비해 철옹산성을 보수하고 군사들을 조련한다. 

1592년 4월 황진이 우려하던 전란이 터졌다. 일본군은 14일 부산진성을 함락한데 이어 15일 동래성까지 접수하고 파죽지세로 한양까지도 몰아쳤다. 황진은 일본군의 진법과 일본검범 연구를 통해 안덕원과 이치전투, 죽주산성 전투 등에서 승리를 거두며 일본군 내에서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제1선의 전투 지휘관 황진은 우렁찬 목소리로 “나와 동복현 군사들이 제일 앞에서 싸울 터이니, 겁먹지 말고 내 명령에 따라 훈련한 대로 움직이면 된다. 우리는 안덕원에서처럼 반드시 저들을 무찌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황진의 말이 끝나자 병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119쪽)

황진은 일본군에게 무서운 ‘오니(도깨비)’로 불릴 만큼 뛰어난 무장이었지만 승산 없는 2차 진주성 싸움에 뛰어 들어 숨진다. 왜 황진은 그런 무모한 결정을 했을까? 

무엇보다도 그는 진주성을 사수해야 호남을 지켜낼 수 있다는 김천일의 주장에 공감했다. 또한 황진은 왜적을 피해 진주성에 모여든 6만명의 피란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진주성 백성 한 명 한 명이 황진에게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가장 큰 명분이요, 가치였다.(272쪽)

그렇다면 김동진 작가는 황진과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까? 작가는 “알고리즘이 이끌었다”며 “기록의 나라 조선에서 이렇게 많은 문헌 기록이 남아 있는데도 황진이 후세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라고 고백했다.   

10여 년 전 의열단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서, ‘의열(義烈)’의 연원과 용례를 알아보기 위해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봤다. 무려 150여 개의 검색 결과가 나왔고, 내용을 살피는 과정에서 2차 진주성 전투와 그곳에서 황진을 만났다. 실록은 2차 진주성 전투와 그곳에서 황진처럼 처절하게 죽어간 인물들을 ‘의열’이라는 단어로 높이고 있었다.(278쪽)  

의열단의 역사가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다는 절박감에서 『1923년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을 썼다. 그때와 같은 심정으로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황진의 뜨거운 삶을 되살리고 싶다는 소망을 담았다. 황진화 치열했던 그의 시대와 삶이 우리 후손들에게 ‘불멸의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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