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의 커피노트> ‘커피 디아스포라’ 하와이 코나 티피카

커피 특징 간직한 원종(原種)…향미 초콜릿, 아몬드, 장미
신진호 기자 2023-05-21 11:09:11

 

하와이 빅 아일랜드의 캡틴 쿡에 있는 카아왈로 트레일 팜(Ka'awaloa Trail Farm)에서 농장주인 토니(Tony)가 잘 익은 커피 체리를 따고 있다. 이곳의 커피 품종은 티피카(Typica)로, 토니는 살충제와 제초제는 물론 살균제도 사용하지 않고 자연 재생 방법을 이용해 재배하고 있다. 사진=토니 페이스북 캡쳐

저는 티피카(Typica)에요. 아라비카(Arabica) 커피의 대표 선주죠. 티피카는 포르투칼어로 ‘전형적인’이라는 뜻을 지녔는데, 영어로 말하면 티피컬(Typical)이죠.

많고 많은 커피 가운데 왜 우리 가문(품종)을 티피카라고 부를까요? 그것은 친척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아라비카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원종(原種·Origin)이라서 그래요. 마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처럼요. 사람들은 이를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하는데, 우리가 ‘커피계의 디아스포라’죠.

자, 그럼 우리 가문의 아주 길고 긴, 이주(移住)의 역사를 들려드리죠. 

지금이야 반도체가 첨단 산업이며 캐시 카우(Cash Cow, 돈 되는 상품)지만 4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커피가 국가 부 창출의 원천이었죠. 그러니 우리 집안이 전 세계로 뻗아나가는 계기가 된 거죠. 여러 나라에서 우리를 탐냈으니까요.

저희 시조(始祖)인 아라비카 할아버지는 에티오피아 카파(Caffa)라는 곳에 사셨죠. 그러다 6~7세기 전쟁 또는 교역을 통해 우리 가문과 사촌인 버번(Bourbon)이 함께 바다를 건너 예멘으로 이주하셨죠. 우리 진면목을 처음으로 알아본 사람은 이슬람을 믿는 아라비아인이었죠. 시조 이름이 아라비카인 이유죠.  

이들은 우리 몸속에 각성이 되면서 피로를 줄이는 효능(카페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예멘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죠. 전매(專賣)를 하면서 국가의 부를 키운 것이죠. 우리가 해외여행을 하려면 꼭 뜨거운 불에 들어갔다 나와야(로스팅) 했죠. 마치 의식처럼요. 그래야 다른 곳에서 자라지 못하잖아요.

커피비평가협회(CCA) 박영순 회장이 인도의 이슬람학자인 바바 부단(Baba Budan)이 예멘에서 커피 씨앗을 가져와 심었던 바바 부단기리 정상에 올라 멀리 바라보고 있다. 사진=커피피평가협회 제공  

그러다 17세 말 큰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우리 가문이 예멘을 떠나 전 세계로 퍼졌죠. 인도의 이슬람학자인 바바 부단(Baba Budan)이 메카 순례를 마치고 예멘에서 커피 씨앗 7개를 훔쳐 고향인 인도 카르나타카(Karnataka) 마이소르(Mysore) 근처 바바 부단기리 언덕(Baba Budangiri Hill)에 심어요. 마치 고려 말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처럼요. 

이 소식을 전해들은 네덜란드 상인 피터 반 덴 브뢰케(Pieter van den Broecke)는 1690년 예멘에서 씨앗이 아닌 우리 티피카 문중 어르신 몇 분을 보쌈 하듯이 납치해 인도네시아 자바로 보냈죠. 당시 네덜란드는 전 세계 해상무역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배에 대포를 장착하고 다녔고 선원은 군인처럼 훈련을 받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으니 예멘 사람들이 위세에 눌려 저항을 못한 거죠. 우리 문중 분들은 처음에 자바에서 안착하지 못했어요. 1699년 지진이 나면서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이죠.

월드커피리서치(World Coffee Research)가 펴낸 '아리비카 커피 품종(Arabica Coffee Varieties)'을 보면 네덜란드는 1696~1699년 인도 마이소르에서 자바로 우리 가문 어르신들을 이주시켰는데, 그 가운데 한 분을 1706년 암스테르담 식물원(Hortus Botanicus Amsterdam)에 보냈죠. 이 식물원은 네덜란드 동인도주식회사 상인들이 보낸 세계 각지의 귀한 약재나 식물 씨앗을 받아 키우거나 연구를 했는데, 커피도 그 중에 하나였으니까요. 

인도 바바 부단기리(Baba Budangiri) 정상 부근에 이슬람 수피(Sufi) 수도승들의 토굴 무덤이 있는데, 이곳에 바바 부단이 잠들어 있다(오른쪽). 참배자들은 예를 갖추기 위해 신발을 벗고 맨발로 토굴에 들어간다. 사진=커피비평가협회 제공

당시 우리 가문은 너무도 핫(Hot)했죠. 아무 나라라 가질 수 없는 ‘굿즈(Goods)’였죠. 암스테르담 시장인 게릿 후프트(Gerrit Hooft)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나고 위트레흐트조약(Vrede van Utrecht) 체결 후 1714년 루이 14세에게 선물한 것이 우리 티피카 묘목이었으니까요. 루이 14세는 우리 가문 어르신들을 파리 식물원(Jardin des Plantes)에서 모셔다 놓고 자신만 감상할 정도로 애지중지했죠. 

그러다 프랑스 장교 가브리엘 드 클리외(Gabriel De Clieu)가 1723년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의 고향인 카리브 해에 위치한 프랑스령인 마르티니크(Martinique) 섬에 우리 가문 어르신을 옮겨 심었고, 이곳에서 무럭무럭 자라면서 프랑스도 커피 선진국이 됐죠.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이후에 식민지인 수리남과 기아나 등에 우리 가문을 전파시켰고, 이들이 브라질과 콜롬비아, 페루, 멕시코, 파나마,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자메이카 등 중남미로 또다시 이민을 가시면서 세계 곳곳으로 퍼진 거죠. 

우리 집은 하와이의 가장 큰 섬인 빅 아일랜드의 캡틴 쿡에 있는 카아왈로 트레일 팜(Ka'awaloa Trail Farm)이에요. 19세기 브라질과 과테말라에서 우리 집안 어르신들(티피카)을 모셔오면서 제가 하와이 태생이 된거죠.
 
농장주인 토니와 루이(Tony & Louie)는 살충제와 제초제는 물론 살균제도 사용하지 않고 자연 재생 방법을 사용하여 저희 가족을 돌보고 있죠. 쉽게 말하면 유기농, 친환경 농법인거죠. 우리 티피카 가문이 병충해야 약해 더욱 신경을 쏟고 있죠.

저의 향미(Flavor)는 어떻까요? 하와이 코나가 워낙 귀하다 보니 커피 마니아들도 저희를 깊게 음미해 보신 분들이 적어요.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고급스런 산미, 단맛, 바디의 밸런스의 조화’ 또는 ‘부드러우면서 신맛이 강한 것이 특징, 구수한 맛과 신맛이 공존하면서 묵직함과 달콤한 향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두리 뭉실하게 쓰고 있어요. 특히 산미(Acidity) 표현은 위처럼 ‘고급스럽다’ 또는 ‘신맛이 강하다’라고 정반대 의견이 있어 어느 것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예요. 

하와이 코나 프라임 티피카 생두(왼쪽)와 로스팅한 원두. 초콜릿과 아몬드, 견과류(Nutty), 꽃향(Floral), 장미 등의 향미를 느낄 수 있다.  

저는 프라임 등급을 받았는데요, 저의 구술을 받아 적고 있는 필자는 제 향미를 초콜릿, 아몬드, 견과류(Nutty)로 평가하시네요. 꽃향(Floral)도 좋다고 하시면서 제게 꽃의 여왕인 장미향도 나신다고 극찬을 하셨고요^^. 단맛이 쭉 이어지는 여운(Aftertaste)과 함께 입안에 꽉차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바디(Body)도 좋다는 평가예요.  

다음은 제에 대한 점수에요.

Aroma 8, Floral 9, Fruit 8, Sour 1, Nutty 8, Toast 8, Burnt 1, Earth 1, Acidity 8, Body 8, Texture 8, Flavor 8, Aftertaste 8, Astringency 1, Residual 1, Soft Swallowing 9, Sweetness 8, Bitterness 1, Balance 8, Defect None(없음). 

필자는 저의 색깔을 밤색(Brown)이라고 표현해요. 커피 잔에 담긴 색이 전형적인 밤색이라며. 제가 커피의 기준인 티피카니 당연한 것이겠죠? 

저를 음미하면서 필자는 고단한 여정을 끝내고 커피를 마시면서 느낀 행복감이 떠오른다고 하네요. 마치 우리 가문이 고단한 여정 속에서도 가문의 전통을 잃지 않고 전 세계로 퍼지나가 많은 이에게 행복감을 주듯이요. 그러니 ‘커피계의 디아스포라’가 맞죠? 

신진호 커피비평가협회(CCA) 커피테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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