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경기 둔화를 공식화한 그린북

대내적으로 고물가-고금리-내수 부진-무역 적자 확대
중국 리오프닝, 세계경제 연착륙 등 대외 여건도 불안
서민 보호위해 물가라도 확실히 잡는 정책 추진해야
신진호 기자 2023-02-27 14:15:13

우리 경제가 최근 둔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정부의 보고서가 나왔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2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내수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부진 및 기업심리 위축이 지속되는 등 경기 흐름이 둔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상 정부기관이 경제 관련 자료를 발표할 때 사용되는 용어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신중하고 완곡한 표현이 주를 이룬다. 매달 발표되는 그린북의 경우에도 지난해 6월 경기둔화가 ‘우려’된다는 표현이 등장한 이후 12월까지 7개월 동안 같은 표현을 유지했다. 그러다 올 1월에 ‘경기둔화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면서 경기 전망을 조금 더 어둡게 진단했고, 한 달 만에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화했다.

‘경기 둔화’를 단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정부가 현재의 경기 흐름에 대해 호전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내적으로는 ‘고물가-고금리-내수 부진-무역 적자 확대’ 등 주요 경제 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대외 요인 역시 중국 리오프닝, 세계경제 연착륙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통화 긴축기조 및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 등 하방위험이 교차해 세계경제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우리 경제의 높은 대외의존도를 감안한다면 현재의 경제 지표를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대외 부문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국내 경기의 둔화 추세를 되돌릴 모멘텀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7개월 동안 경기둔화가 우려된다는 표현을 고수하면서 대외 부문의 변화를 기대했지만, 올해 들어서도 불확실성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경기 둔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경기 둔화 추세의 공식화는 한국은행의 금리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지난 23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연 3.50%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금리 동결의 이유에 대해 금통위는 성장 부진(불황)과 향후 (세계)경제 흐름의 불확실성을 제시했다. 또한 금통위는 “앞으로 국내 경제는 글로벌 경기 둔화,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부진한 성장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혀 정부의 시각과 궤를 같이했다.

실제로 2월 그린북에 나타난 국내 주요 경제지표는 경기둔화 추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12월 전(全)산업 생산은 전월 대비 1.6% 감소했으며,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도 각각 7.1%, 9.5% 줄었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수출 또한 심각하다. 1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6.6% 감소했고 무역수지 적자는 127억 달러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규모에 이른다.

경제 지표가 전반적으로 부진함에 따라 현재 경제상황을 나타내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 12월 전월 대비 0.9포인트(p) 하락했다. 향후 경기 변동을 가늠할 수 있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0.5p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업 심리를 보여주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1월에 5포인트(p) 떨어졌고 2월 전망 역시 하락이 예상되는 등 경기가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언급된 이른바 ‘복합위기’의 실체가 구체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확고한 물가 안정, 민생부담 완화 기조 하에 수출·투자 활력 제고에 총력 대응하면서, 3대 개혁, 에너지 효율 향상 등 경제체질 개선 및 대내외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원론적인 대책을 수개월째 되풀이하고 있다. 이를 달리 생각하면 대외 요인의 변화가 없는 한 정부로서도 뚜렷한 대응 방안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경기 둔화가 확실하고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면 정부 정책은 물가만이라도 확실하게 잡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어나가야 할 것이다. 경기 침체 기간 동안 가장 큰 고통을 받을 취약 계층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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