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K반도체 산업에 내려진 위기 경보

미·중 갈등 속 ‘실리’와 ‘동맹’ 선택 고민 깊어져
반도체 지원법도 경쟁국에 뒤져…정책 변경 필요
2023-01-02 13:33:03

미·중 갈등에서 시작된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미·중 갈등의 원인은 좁게 보면 심각하게 쌓여가는 대중(對中)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미국의 대응이고, 넓게 본다면 향후 미국 패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은 중국을 사전에 견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다. 미·중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3년 강한 중국을 표방하는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면서부터라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장기 집권의 포석의 일환으로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힘을 과시하기 시작한 것이 미국의 입장에서는 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은 정치·경제·군사 등 다방면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으로 국한해서 보면 오바마 정부 시절 중국과 갈등이 시작되었고,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대해 무차별적인 무역 보복이 단행했다. 그리고 현 바이든 대통령은 보다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무역 제재 수단을 넘어서 중국의 첨단 산업(혹은 미래 산업) 자체를 억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전략은 첨단 산업에 필수인 반도체 관련 핵심 소재·부품의 대중국 수출을 억제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반도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전쟁은 필연적으로 글로벌 가치 사슬과 국제 분업 질서의 변화를 초래했다. ‘메모리반도체(한국)-패키징(중국)-반도체 설계(미국)-파운드리(대만)’의 고리에서 중국이 빠지면서 각국은 새로운 반도체 질서 구축과 향후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특히 지난해 반도체 대란 이후 공급망 확보가 부각된 가운데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반도체 주요 생산과 소비국들은 각자의 셈법에 따라 합종연횡과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먼저 미국은 지난해 8월 미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과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28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을 제정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과 연구 개발에 520억 달러를 지원 ▲첨단 분야 연구 프로그램에 2000억 달러(약 262조7000억 원)를 투자 ▲반도체 투자에 25% 세액공제 신설로 향후 10년간 240억 달러의 지원하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중국을 배제하는 반도체 공급망 구축과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해 한국, 대만, 일본이 참여하는 ‘칩4 동맹’ 결성을 시도하고 있다.

미·중 갈등의 또 다른 당사자인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 맞서 ‘반도체 굴기’라는 이름하에 반도체 산업의 자립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1430억 달러에 달하는 반도체 지원법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203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칭화유니(淸華紫光)를 비롯해 파운드리 업체인 SMIC 등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미국의 지속적인 견제로 반도체 굴기의 목표 달성은 쉽지 않아 보이지만, 다른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은 앞으로 더 강력해 질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인 대만은 글로벌 경제와 국제정치 무대에서 자국의 존재를 각인시키는데 반도체 산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TSMC는 중국과 대척점에 있는 미국과 일본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는 한편, 새롭게 재편되는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과 함께 주도해 현재의 우위를 지켜나가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일본은 이번 기회에 잃어버린 반도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미국, 대만과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 공장의 자국 내 입지를 지원하는 법안을 발표해 TSMC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미국 주도의 칩4 동맹에도 적극적이다.

이렇듯 반도체를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중간에 낀 어정쩡한 상태가 되었다. 반도체 개발과 생산과 같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미국, 일본 등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의 약 40%를 구매하고 있는 중국과 관계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칩4 동맹에 참가한다고 밝혀 미국 중심에 편승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지만, 일본, 대만과 달리 적극적인 행보를 취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반도체 특별법(K칩스법)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대기업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 시설에 투자하면 투자금액의 8%의 세액 공제로 기존 대비 2%p 증가에 그치고 있다. 중견기업(8%)과 중소기업(16%)은 기존과 동일하게 묶었다. 주요 경쟁국들이 반도체 산업에 최대 25% 세액 공제와 함께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비해 크게 부족하다는 평가가 따른다. 일각에서는 이대로 가면 향후 5년 내 반도체 산업이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은 메모리 부문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고,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대만을 추격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에 참여는 하되 우리의 최대 시장인 중국의 눈치를 살펴야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행보는 어렵다. 여기에 더해 반도체 지원법 또한 경쟁국인 미국, 일본, 대만, 중국에 비해 떨어지는 등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대외 요인은 외생 변수라 논외로 한다고 해도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 정책은 크게 달라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경쟁국과는 같아야 한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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