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서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정화용 약사 “커피는 삶의 활력소” 
“카페+약국 결합 모델화로 승부”
신진호 기자 2024-01-21 09:06:18
정화용 약사가 약국과 커피 하우스를 결합한 카페 파마시아(Caffe Farmacia)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며 약국 운영과 커피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士)’가 붙는 직업은 모두의 꿈이다. 의사와 약사 등의 자격증은 퇴직 시점이 없고 돈도 많이 벌기 때문에 누구나 소망한다. 더욱이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선생님’으로 신분이 수직 상승한다.

그러나 정화용(43) 약사는 ‘약사의 틀’을 항상 벗어나고 싶어 한다. 역주행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어릴 적 꿈인 ‘요식업 종사자’가 되기 위해 중앙대 약학대학을 졸업한 뒤 한식과 양식 요리학원에 등록해 음식을 만들며 칼질과 플레이팅(Plating)을 쉼 없이 연마했다. 유명 셰프(Chef)의 특강에도 참여해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유학을 다녀와야 하나?’라는 생각도 가졌지만 ‘너무 늦게 시작해 최고가 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을 내리며 쓸쓸히 약국으로 되돌아갔다.

그렇지만 그에겐 약국이 새장처럼 너무도 갑갑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확 풍겨오는 약 냄새가 너무도 싫었다. ‘약국 탈출’이 또다시 그의 꿈이 됐다. 칵테일을 만드는 조주기능사에 합격하고도 ‘갈증’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 커피를 알게 됐다. 커피 공부에 빠져들면서 삶에 활력이 돌았다.

2009년 커피감별사인 큐그레이더(Q-Grader) 시험에 도전해 이듬해 자격증을 취득했고, 내친김에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인도네시아 등 커피 산지도 다녀왔다.

2012년 드디어 정 약사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원두 수입과 판매를 겸하면서 손님들과 소통을 하자는 의미를 담은 ‘엔터하츠(Enter Hearts)’라는 카페를 서울 방배동에 차렸다. 약국은 이젠 부업이 됐다. 

엔터하츠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2022년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 에스프레소(Espresso) 전문점을 연데 이어 2023년 신논현역과 논현역 사이에 약국과 커피 하우스를 결합한 ‘카페 파마시아(Caffe Farmacia)’를 열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카페 파마시아(Caffe Farmacia). 병원 건물 1층에 약국과 커피 하우스가 결합한 카페 파마시아가 들어서 있다. 

정 약사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카페 파마시아를 찾아 갔을 때, 사실 걱정이 앞섰다. 그의 카페 위치는 공교롭게도 스타벅스뿐 아니라 다른 약국도 지근거리에 있었기에 ‘장사가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의구심은 곧 기우(杞憂)였음을 깨달았다. 카페 안에는 손님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처방전을 든 환자들이 잇따르면서 정 약사는 조제실에서 한동안 나오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카페 파마시아의 강점은 병원과 약국, 카페가 한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다. 병원 환자들이 처방전을 받으면 카페 파미시아에서 약을 조제하고, 커피도 마실 수 있어 환자는 물론 손님들의 호응이 높다. 

이 같은 병원·약국·카페의 콜라보(Collaboration)는 건물주인 병원장의 적극적인 ‘구애’로 이루어졌다. 정 약사는 “건물을 신축한 병원장님은 1층에 카페 입점을 원해 수소문하다 약사이면서 커피 사업을 하고 있는 저에게 연락을 해 오셨다”며 “건물의 가치를 높이면서 카페와 약국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면서 메뉴도 새롭게 개발했다”고 말했다. 카페 파미시아의 콘셉트는 에스프레소의 나라, 이탈리아다. 카페 이름도, 메뉴도 이탈리아어를 사용했다. 

카페 파미시아의 시그니처 메뉴, 카페 아란시아(Caffe arància). 오렌지에 에스프레소, 그 위에 크림을 얹은 뒤 칵테일처럼 오렌지 한 쪽으로 멋을 냈다. 

카페 파미시아의 시그니처 메뉴는 ‘카페 아란시아(Caffe arància)’다. 오렌지 주스를 담은 유리잔에 에스프레소를 넣고 그 위에 크림을 얹은 뒤 칵테일처럼 오렌지 한 쪽으로 멋을 낸 아란시아는 젊은 층에 인기다. 마키아토(Macchiato)를 재해석해 수제 크림을 듬뿍 넣은 ‘카페 콘 판나(Caffe con panna)’와 에스프레소에 마시멜로우를 풍덩 띄운 ‘카페 마시멜로우’도 호평을 받고 있다.

마키아토(Macchiato)를 재해석해 수제 크림을 듬뿍 넣은 카페 콘 판나(Caffe con panna, 왼쪽). 스위트(sweet)한 크림이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잡아 젊은 층이 좋아한다.   

정 약사에게 커피는 좋은 성분을 지닌 음료다. 정 약사는 “인간은 커피를 오래전부터 음용해 왔지만 약으로 인식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커피에 간의 염증과 간암에 효과가 있는 카와웰(kahweol) 성분이 식품 중 유일하게 함유되어 있고, 항산화 물질인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 등 좋은 성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카페인이 함유된 약이 있을 정도로 커피와 약은 가까운 사이”라고 웃음 지었다.    

정 약사에게 카페는 편하게 쉬고, 힘들 때 커피 한 잔으로 위로를 받는 공간이다. 정 약사는 “저희 매장 유리창이나 머그컵에 라틴어로 위안, 위로를 뜻하는 ‘콘솔라치오(Cōnsōlātiō)’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며 “약국이나 커피숍 모두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힘을 주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본질은 같다는 생각에 이러한 표현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3개의 카페를 운영하는 정 약사는 힘든 점으로 일관성을 꼽았다. 그는 “지점을 늘렸을 때 가장 큰 문제가 커피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카페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관리가 잘 안 돼 몇 개 지점을 접을 정도로 시행착오를 겪었다”며 “메뉴를 개발할 때도 직원들과 상의하는 이유도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약사의 꿈은 카페 파마시아처럼 약국 기능을 갖춘 카페의 모델화다. 그는 “자리를 잘 잡으면 약국이 카페보다 수입이 낫지만 수도권에 웬만한 곳은 모두 약국이 들어차 개업이 힘든 상태”라며 “카페+약국 모델화를 통해 새로 개업하려는 약사에게 멘토가 되면서 사업도 확장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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