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소비국을 넘어 생산국으로> “커피로 인생 2막 시작해요”

쿠잉농장 김영남 대표 “커피 농사 재밌고, 만족도 높아”
첫 수확 버번 커피 테이스팅에서 ‘K커피’의 가능성 보여   
신진호 기자 2023-11-20 07:30:04

김영남 대표가 전남 고흥군 포두면 쿠잉(Cooing)농장에서 커피 나무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영남 대표 제공

쿠잉(Cooing)농장 김영남(62) 대표에게 커피는 희망이다. 농장 이름을 ‘달콤한 속삭임’이라는 단어를 선택할 정도로 김 대표에게 커피는 기쁨이며 즐거움이다. 김 대표는 “제가 생산한 커피를 마시면서 연인들이 정겹게 속삭이듯 좋은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농장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모작 인생을 산다. 20여 년간 업(業)으로 해온 가스 판매업의 1막 커튼이 내려올 즈음, 그는 커피로 2막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와 커피의 인연은 아로마(Aroma·향기)에서 시작됐다. 우연히 지인이 농사짓는 커피 비닐하우스를 찾은 그는 순백의 커피 꽃에서 내뿜는 재스민 향기에 취해 버렸다. 집에 돌아온 그는 바로 결심을 했다. 커피나무를 심자고.

결심은 실행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2000년 3월 전남 고흥군 포두면 300평의 땅에 비닐하우스를 지은 뒤 버번(Bourbon) 200주와 티파카(Typica) 60주를 심었다. 이듬해에는 200평의 비닐하우스에 밀도를 낮춰 티피카 110주를 심었다. 

고흥은 일조량이 많고, 겨울 기온도 비교적 높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1991년부터 2020년 고흥의 평년값 최고기온은 19.2℃, 최저기온은 8.6℃, 평균기온 13.7℃에 달할 정도로 기온의 연교차가 적고 온화하다. 추위에 약해 겨울이 없는 열대·아열대 지역에서만 자라는 커피나무의 특성상 고흥이 커피 농사의 최적지로 손꼽히는 이유다. 

겨울이 다른 지역보다 따뜻하다고 해서 커피 농사가 순탄한 것은 아니다. 겨울철 영하로 떨어지면 비닐하우스에 난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커피 농사는 경제성이 떨어진다. 

전남 고흥군 포두면 쿠잉(Cooing)농장에서 익어가는 커피 체리. 사진=김영남 대표 제공

실제로 올해 상업적으로 첫 수확한 쿠잉농장의 손익계산서를 보면 커피 체리 400㎏을 수확해 수세식(Washed) 가공을 거쳐 생두 30㎏을 생산, ㎏당 25만원의 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집계됐다. 커피 생산 비용 가운데 난방비가 90%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난방비로 인한 생산 단가가 높다는 것이 국내 커피 농사의 최대 걸림돌”이라며 “내년에는 생두 100㎏정도를 생산해 올해보다 생산 단가가 낮아지겠지만 해외 수입 커피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커피 농사의 또 다른 장애는 커피를 심고 생산하는데 3~5년간 소득이 없다는 점이다. 다른 소득 없이는 커피 농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커피에서 미래를 보고 있다. 그는 “커피 농사는 일상생활에서 느끼지 못하는 재미가 있고, 만족도도 높다”며 “시설 투자비 회수가 오래 걸린다는 약점이 있지만 여유 자금이 있으면 커피 농사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전남 고흥군 포두면 쿠잉(Cooing)농장에서 자라는 커피 묘목. 사진=김영남 대표 제공

김 대표는 커피 농사가 안정기에 접어드는 내년부터 커피 판매·가공은 물론 체험 관광도 겸하는 6차 산업을 계획하고 있다. 그래서 김 대표에게 커피는 희망이면서 즐거움이다.

쿠잉농장에서 올해 4~5월 수확한 버번을 구입해 테이스팅을 해봤다. 먼저 생두 상태. 깔끔하지 않았다. 미끈하고 쭉 펴진 타원형이 아닌 쭈그러져 있고, 전체적으로 과육(Pulp)을 완벽히 볏겨내지 못했는지 생두에 잔여물이 낀 듯한 모습이었다. 로스팅을 해보니 원두는 쭈그러진 모습이 더욱 두드러졌고, 센터컷(Center cut) 두께가 일반 원두의 4~5배 정도에 이를 정도로 제대로 모양을 형성하지도 못했다. 

쿠잉농장의 버번 생두(왼쪽)와 로스팅한 원두. 생두가 미끈하고 쭉 펴진 타원형이 아닌 쭈그러져 있고, 잔여물이 낀 듯한 모습이다. 원두에서 쭈그러진 모습이 더욱 두드러졌고, 센터컷(Center cut)이 지나치게 컸다. 바로 밑 탄자니아AA 버번과 비교해 보면 이런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완전히 숙성하지 않은 생두를 가공해서 이같은 모양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탄자니아AA 버번 생두(왼쪽)와 로스팅한 원두.

쿠잉농장의 버번을 탄자니아AA 버번과 비교해보니 원두와 생두의 모습에서 확인한 차이가 보였다. 아마도 덜 숙성된 체리를 따서 가공을 했기에 제대로 된 원두·생두 모습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김 대표는 “커피 체리가 빨간색이면 따서 가공했는데, 실제는 더 익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며 “올해의 경험을 교훈 삼아 내년에는 완숙한 체리를 따서 가공해 상품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테이스팅을 진행한 쿠잉농장의 커피는 열량을 많이 주고 빨리 로스팅한 것(Fast Roasting)과 열량을 줄여 시간을 좀 더 늘인 것(Slow Roasting), 2가지로 나눠 진행했다.

패스트 로스팅한 원두를 수동 그라인더로 분쇄하니 스파이스와 견과류(Peanuts)의 아로마가 짙게 피어올랐다. 추출해 마시니 자몽의 산미와 말린 자두(Prune), 다크 초콜릿의 향미(Flavor)가 느껴졌지만 참기름의 진한 냄새처럼 짙는 스파이시가 올라와 약간 거북했고, 텁텁한 맛도 배어 나왔다.

슬로우 로스팅 원두에서는 재스민의 아로마가 풍겼고, 오렌지와 복숭아(Peach), 초콜릿의 향미를 느꼈다. 전체적으로 패스트 로스팅 원두에서 레드 와인의 묵직함을, 슬로우 로스팅 원두에서는 숭늉의 구수함과 같은 라이트 함이 느껴졌다.

두 번째 테이스팅에서도 첫 번째 테이스팅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두 가지를 섞어 진행한 세 번째 테이스팅에서는 쓴맛(Bitterness)이 느껴졌고, 이런 쓴맛은 여운(Aftertaste)까지 이어졌다.

쿠잉농장의 버번 테이스팅 점수는 다음과 같다.  
  
Aroma 7, Floral 7, Fruit 7, Sour 1, Nutty 7, Toast 7, Burnt 2, Earth 1, Acidity 6, Body 7, Texture 6, Flavor 7. Astringency 2, Residual 2, Soft Swallowing 6, Sweetness 6, Bitterness 3, Balance 6, Defect None.         
  
쿠잉농장의 커피를 마신 뒤 연상되는 색깔은 녹색(Greem)과 황토색(Yellow ocher)이었다. 쿠잉농장에서 'K커피'의 가능성을 보았고, ‘커린이(커피+어린이)’로서의 새싹이 연상됐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가야할 황톳길의 험난한 여정도 보였기 때문이다. 

커피비평가협회(CCA)의 쿠잉농장 버번 평가 노트.

커피비평가협회(CCA)에서 진행한 쿠잉농장의 생두 평가지를 살펴봤다. 아로마 8, 산미 7, 바디 8, 향미 7, 여운 8 등 100점 만점에 78점을 기록했다. 

커피비평가협회 박영순 회장은 "시설하우스에서 커피 생두를 생산하는 곳이 현재 한국이 유일하다는 점은 어려움인 동시에 큰 기회이기도 하다"면서 "와인에서 테루아의 가치가 높은 것처럼 커피에서도 '한국 커피의 테루아'를 드높이면 세계 커피 시장에서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쿠잉커피의 노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진호 커피비평가협회(CCA) 커피테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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