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의 커피노트> 놀라운 인도네시아 커피의 향미
2025-06-06
자메이카 블루마운틴(Blue Mountain)처럼 논란이 많은 커피는 없을 것이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 팬시(Hawaiian Kona Extra Fancy), 예멘 모카 마타리(Yemen Mocha Mattari)와 함께 ‘세계 3대 커피’라고도 불리기도 하지만 ‘일본의 상술(마케팅)’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평가절하 되기도 한다.
가격 또한 높아 커피 애호가라 하더라도 진입 장벽이 되곤 한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의 가격이 에티오피아 구지(Guji)나 예가체프(Yirgacheffe) 1등급 커피보다 5~10배 이상을 호가하보니 마시기에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산량의 10%만이 전 세계에 풀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블루마운틴 넘버원(No.1) 싱글 오리진(Single Origin)을 만나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처럼 어렵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을 접할 수 없으니 ‘카더라’는 전언통신(傳言通信)만 난무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커피비평가협회에서 직수입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넘버원을 언박싱(Unboxing)하면서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자메이카의 커피 농사는 영국 식민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총독인 니콜라스 로우스(Nicholas Lawes)는 1728년 마르티니크 섬에서 커피 묘목을 가져와 블루마운틴 경사면에 심었다. 자메이카는 1932년 15만톤을 생산하면서 절정을 이뤘지만, 커피 녹병(Coffee Leaf Rust)이 퍼지고 1929년부터 시작된 세계 대공황이 겹치면서 커피 산업이 괴멸 직전까지 갔다.
명맥만 이어오던 자메이카 커피의 부활은 1964년 일본과 수교를 하면서 이뤄졌다. 일본은 자금난에 처한 자메이카 정부에 외환을 지원해 주고, 그 대가로 커피 산업에 눈을 돌렸다. 19세기 농업 이민을 통해 하와이 코나 지역에서 커피 농사에 대한 기술을 축적한 일본은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고급화를 꾀했다. 생산 방식을 개선하고 생두 등급화를 도입했다. 일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생두를 마대 자루가 아닌 오크통에 담아 차별화했고, 생산량 전부를 매입해 자국으로 90%를 가져가면서 10%만 세계에 유통시켰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자 신비감이 더해졌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영국 연방의 일원인 자메이카는 연방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블루마우틴을 헌상했고, 여왕이 블루마운틴을 즐긴다는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지면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여왕의 커피’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먼저 오크통에 담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넘버원 개봉에 들어갔다. 오크통은 위와 아래 철 띠 4개를 두르고 있는데, 위쪽 철 띠 2개를 고정한 나사 2개씩을 풀었다. 드라이버와 고무망치를 이용해 철 띠를 푸느라 한참을 씨름한 끝에야 오크통 뚜껑을 열 수 있었다. 마대에 담긴 커피만 개봉한 초보자에게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생두는 통속에 그대로 담겨 있지 않고, 연녹색 비닐에 포장되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비닐에 달린 플라스틱 지퍼였다. 보통 마대 자루에 담긴 생두 또한 연녹색 비닐에 담겨 있지만, 비닐을 묶는 방식이 케이블 타이(Cable tie)이기 때문이다. 칼 등의 도구를 이용해 케이블 타이를 자르는 불편함 없이 지퍼만 열면 생두를 쉽게 꺼낼 수 있는 지퍼백 방식이기에 ‘일본의 세심함’이 느껴졌다.
지퍼를 열자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의 알싸한 생두 향이 올라왔다. 올해 수확한 커피라 신선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파치먼트를 벗겨낸 생두는 먼지하나 붙어있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이 부분에서도 ‘일본의 청결함’이 녹아 있어 약간 놀랐다.
가정용 커피 로스터인 팻보이(Phat Boy)를 이용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넘버원 워시드(Washed) 100g을 로스팅했다. 로스팅 후 1분이 지나면서 곡물(Grain) 볶는 고소함이 올라왔고, 그 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짙어졌다.
8분40초에 ‘탁탁’하는 1차 팝핑(Popping)이 시작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커피콩들이 서로 경연하듯 팝핑 소리가 왕성하게 울려 퍼졌다. 로스팅은 10분에 마쳤다. DTR은 13.33%, 원두는 87.1g을 얻었다.
가스가 빠지면서 원두가 안정되도록 로스팅을 한지 3일이 지나고 테이스팅을 했다. 원두를 갈자 고소한 냄새와 함께 스파이스(Spices), 장미(Rose) 향이 올라왔다.
커피와 물 비율을 1대 15에 맞춰 핸드드립으로 내린 뒤 아로마를 맡자 짙은 초콜릿 향이 묻어났다. 한 모금 마시자 커피 성분이 농축되어 있어 ‘짙고 묵직하다(Heavy Body)’했다. 산미(Acidity)는 그리 높지 않았고 다크 초콜릿의 강함이 느껴지면서 자두, 아니 농밀한 피자두가 연상됐다. 커피를 마시고 난 뒤에도 단맛이 입안에 남을 정도로 여운(Aftertaste)이 깊었다. 우아함(Elegance)의 극치였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넘버원 테이스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에티오피아 원종(原種)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산비탈에 옮겨진 뒤 그곳의 토양과 환경에 적응하면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이뤘고, 여기에 일본의 장인 정신이 접목하면서 명품 커피로 우뚝 섰다는 생각이다.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은 “이른바 명품 커피들이 지니고 있는 스토리텔링은 그 커피들을 더욱 소중하게 만드는데, ‘영국 여왕의 커피’라는 비유를 얻은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 대표적이다”며 “그러나 묵지 않은 제철 커피로 즐겨야 진면목을 알 수 있으므로 반드시 신선도와 관련한 정보를 확인하며 스페셜티 커피를 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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