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나트륨이온 배터리, 게임 체인저되나
2025-05-05
2024년 6월 졸탄 포즈사(Zoltan Poszar)가 처음 언급한 ‘마러라고 협정(Mar-a-Lago Accord)’은 미국이 자국의 안보 우산을 제공하는 대가로 다른 나라들에게 약해진 달러를 수용하고, 미국 국채 투자에 대한 낮은 금리를 강요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1985년 일본, 서독, 영국 등 주요국들이 미국과 함께 달러 가치를 공동으로 약화시키기로 합의한 ‘플라자 합의’의 현대판 해석이다. 뉴욕의 플라자 호텔(1988년부터 1995년까지 트럼프 소유) 대신 플로리다 팜비치에 트럼프가 소유하고 있는 마러라고 클럽으로 명칭을 대체한 가상의 협의다.
마러라고 협정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것은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이 작성한 ‘미란 보고서(The Miran Report)’이다. 미란 보고서는 미국의 무역 적자와 구조적인 강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교역 대상국에 최대 20%의 관세 부과 ▲‘마러라고 협정’과 같은 다자간 통화 협정을 통한 달러 약세 유도 ▲100년 만기 국채 발행을 통한 부채 문제 해결 등을 제안한다. 보고서는 강한 달러가 미국 제조업 쇠퇴와 일자리 감소의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하며, 관세와 달러 약세를 통해 미국의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기축 통화국의 위상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마러라고 협정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와 달러 약세 선호 발언들은 미란 보고서의 내용과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고율의 관세 부과를 통해 무역 불균형 해소를 시도하고, 환율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달러 약세를 유도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비록 마러라고 협정이라는 이름의 공식적인 틀은 없었지만, 미란 보고서가 제시한 아이디어들이 트럼프 정부의 경제 정책 결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대만 달러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의 강세(달러 약세) 현상은 미·중 무역 갈등 완화 기대감, 글로벌 경기 회복 전망, 그리고 미국의 통화 정책 불확실성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최근의 환율 변동이 미국의 대내외 경제 정책 변화가 아닌 시장의 기대심리와 일시적인 시장 흐름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마러라고 협정이나 미란 보고서의 직접적 실행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뚜렷한 정책적 근거나 공식적 언급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마러라고 협정’과 ‘미란 보고서’를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미국이 과거 플라자 합의처럼 자국의 전략적 우위를 활용해 글로벌 통화 질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주요 무역 상대국에 대한 일방적인 추가 관세 부과와 함께 ‘공정한 환율’을 강조하며 환율 개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장은 과거 플라자 합의와 유사한 정책 시나리오가 나타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금융시장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마러라고 협정’과 같은 달러 약세 유도 정책이 현실화된다면 글로벌 환율 질서가 재편되고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는 등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이 불가피하다. 또한 자본 유출입 불안정, 금리 변동성 확대, 글로벌 인플레이션 심화 등 부작용도 동반될 수 있다. 달러화 약세에 민감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유사시에 대비한 외환시장 개입 여력을 유지하고, 수출 시장의 다변화 및 내수 확대를 통해 급변하는 외부 충격을 완화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G7 및 G20 등을 활용해 미국의 일방적인 압력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전략 수립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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