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감귤 하우스 농사 어때요?”

대기업 퇴직 후 제주에서 농부의 삶 선택한 박재영씨
초기투자 많지만 안정적 수입과 함께 여가 즐겨 만족  
이재영 기자 2024-05-21 09:41:29

퇴직 후 제주도에서 감귤 하우스 농사를 지으며 2막 인생을 살고 있는 박재영씨가 감귤 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50대에 들어서면 기로에 서게 된다. 퇴직을 강요당할지, 제발로 회사 문을 나갈지. 그러면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회사를 다니면서 2모작 인생을 준비한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정년까지 다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남은 인생에 무엇을 할지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임원에 오르며 탄탄대로를 걷던 박재영(55)씨도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았다. 중국과 폴란드, 국내 LCD단지 등의 공장 건설 총괄을 하면서 무탈하게 직장에 다녔지만 ‘매너리즘에 빠지고 회사 성장이 다 했다’는 생각이 들자 2020년 과감히 사표를 제출했다.   

27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한번도 여유로운 삶을 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제주 한달 살기에 돌입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올레길을 걷고, 낚시를 하는 등 무계획적으로 사는 제주 살이는 삶에 활력을 주었다. 노후는 제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제주도에는 아무런 기반이 없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이것저것 궁리하던 차에 뜻밖에도 회사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도 퇴직을 했는데 제주에서 감귤 농사를 지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박씨는 도시에서만 살아 농사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에 농사일이 힘에 겨운지, 수입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 세세히 물어봤다. 후배는 “저도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하우스 감귤 농사를 짓고 있는 멘토 친구가 있어 귀농을 결심하게 됐다”며 “하우스 감귤 농사는 자동화가 많이 되어 있어 하루 2시간 정도의 노동력을 투입하면 혼자서 1000평을 지을 수 있고, 품질이 일정해 수확도 농협에서 직접 해간다”고 말했다.

1000평 달하는 박재영씨의 감귤 하우스에 성목 330그루가 관리하기 좋게 오(伍)와 열(列)에 맞춰 심어져 있다. 감귤은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수확하게 된다.

박씨는 제주에 다시 내려가 상황을 살펴봤다. 하우스 감귤 농사는 10평 기준에 10만원의 매출이 발생해 전기세와 농약, 비료값 등 경비 20~30%를 제하면 순수익은 70~8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땅값이 4억~5억원, 하우스 시설 투자비 2~3억원 등 7억~8억원이 들지만 귀농자금 3억원(연 2%, 3년 거치 10년 상환) 등을 대출받으면 5억원 정도의 투자비가 들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귀농하기로 결심이 서자 친구들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농사가 쉬운 것이 아니다”, “감귤값 폭락으로 농민들이 힘들어한다는 뉴스 안 들었느냐” 등의 부정적인 말이었다.

그래도 박씨는 ‘땅을 사 놓으면 가치가 올라가고, 노동을 하니 건강하게 여가를 즐기면서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2022년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도로 향했다.

박씨는 먼저 농사 지을 땅을 매입했다. 마침 매물로 나온 3000평 밭을 후배와 공동으로 구매한 뒤 분할 등기를 마쳤다. 후배 하우스가 옆에 들어서면서 품앗이도 가능해지고, 물탱크와 헛간, 창고 등을 공동으로 사용해 농사의 효율성도 높였다. 

2023년 5월 하우스가 완성되자 박씨는 묘목 700그루를 관리하기 좋게 오(伍)와 열(列)을 맞춰 심었다. 그해 10월 박씨는 운 좋게도 성목 330그루를 구할 수 있어, 심었던 묘목을 파내고 성목을 심었다. 묘목은 심은 뒤 7년 정도 후 수확할 수 있지만 성목은 2년 후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쳇바퀴를 돌던 직장인에서 농사꾼으로 2막을 살고 있는 박씨. 그는 “삶에 매우 만족하다”고 말했다. 오전 6시30분에 눈을 떠서 7시쯤 하우스에 나가는 박씨는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나무의 상태를 하나 하나 확인하는 예찰(豫察)을 1시간 30분정도 한다. 비료나 농약은 시기에 맞춰 주고, 나무에 물은 스프링 클러가 주기에 고된 노동은 없다. 

귀농 전 후배가 말한 대로 2시간 정도의 노동을 마치면 그는 오름이나 올레길을 걷거나 낚시를 하기도 하고, 혼자서 영화를 보러 시내에 나가기도 한다. 재즈(Jazz)를 좋아하는 그에게 단골 재즈 바도 생겼다. 

제주에서 농사꾼으로 2막 인생을 살고 있는 박재영씨가 창고 자투리 땅에 감귤 나무를 심고 있다. 

하지만 박씨에게도 경제적인 문제는 고민거리다. 감귤 수확은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에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씨는 2막 인생을 준비하는 50대에게 제주 하우스 감귤 농사를 적극 추천한다. 그는 “초기 경제적 부분을 잘 견디면 누구의 간섭이나 눈치 없이 자신이 주도해 남은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후배와 함께 ‘창고 카페’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친구나 친척이 방문할 때 이곳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노래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며 “도시의 삶에 지친 지인들에게 힐링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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