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의 커피노트> 초콜릿 맛 일품 라오스 프랑케오 세미 워시드

볼라벤 고원서 자란 카투라·티모르 하이브리드 교배종
라오스 '커피 변방'이지만 스페셜티 커피 도약 가능성 
신진호 기자 2024-02-14 08:19:27

해발 1222m 라오스 볼라벤 고원에 위치한 클럽그린커피 농장 전경. 하늘과 맞닿은 45만평의 넓은 대지에서 SJ133과 게샤 등의 품종이 자란다. 

지난해 말 라오스 커피 산지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뒤 ‘라오스 커피’에 대한 고정 관념이 깨졌다. 그동안 ‘커피 변방’으로 여겼던 라오스도 볼라벤(Bolaven) 고원과 같은 훌륭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고, 커피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노고와 정성 또한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여건만 갖추어진다면 충분히 스페셜티 커피 생산국으로 도약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라오스 커피는 대부분 유기농이다. 비료는 국제적으로 가격이 치솟으면서 언감생심이고, 기후 온난화로 병충해가 기승을 부리지만 라오스 농민들은 농약 치기를 꺼린다. 베트남 전쟁에서 고엽제 후유증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라오스는 베트남 전쟁 중 북베트남이 병력과 물자를 남베트남으로 보내기 위해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산악지역을 연결한 ‘호치민 루트’ 건설·이용을 묵인하면서 미군의 무차별 폭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지금도 커피농장 등을 개간하면서 불발탄이 꽤 발견된다고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2023/24 라오스 햇커피를 만났다. 이번에 테이스팅할 커피는 라오스 볼라벤 프랑케오(Phoulangkeo) SJ133이다. 가공법에 약간 차이가 있는데, 하나는 생두 껍질을 벗긴 뒤 점액질을 물로 완전히 세척한 워시드(washed)고, 다른 하나는 점액질 제거를 최소화한 세미 워시드(semi-washed)다.

전통의상을 입은 클럽그린커피 농장 직원이 잘 익은 커피 체리를 따고 있다. 

라오스 남부에 위치한 볼라벤은 라오스 커피 생산의 전진기지다. 해발 800~1300m의 고원 지대로 연평균 17~23℃의 서늘하고, 연간 강수량도 3000㎜에 육박할 정도로 풍부하다. 게다가 1600만 년 전 시작된 화산 폭발이 2만7000년 전까지 이어지면서 형성된 현무암 지역이라 토양에 마그네슘과 망간, 구리, 아연, 칼륨 등 미네랄이 풍부하다. 

라오스 볼라벤 클럽그린커피 농장의 SJ133 커피 나무에 붉게 익은 체리와 아직 여물지 않은 풋체리가 함께 달려 있다. 

SJ133은 코스타리카 커피연구소(ICAFE)에서 카투라와 티모르 하이브리드 832/1을 교배해 만들었다. ‘코스타리카95’ 명칭을 부여한 뒤 세계 각지로 분양했는데, 라오스에서는 SJ133으로 불린다. 태국과 라오스와 같은 덥고 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며, 수확량이 많고 향미도 좋다.

먼저 SJ133 워시드 테이스팅에 들어갔다. 핸드밀로 분쇄하니 스파이스(Spicse)와 플로랄(Floral)이 피어올랐다.

핸드드립 후 한 모금을 마시자 기분 좋은 장미향(Rose)이 감돌면서 시리얼(Cereal/Grain)과 함께 초콜릿을 먹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산미는 자몽(Grapefruits) 정도의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약간의 풋내(Green)가 거슬렸다. 여운(Aftertaste)은 길지 않았지만 떫은맛(Astringency)이나 잔존감(Residual)은 없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어진 SJ133 워시드의 테이스팅에서도 풋내가 커피를 마시면서 즐기는 사유(思惟)를 방해했다.

SJ133 세미 워시드는 예상대로 SJ133 워시드보다 향미(Flavor)가 좋았다. 핸드밀로 분쇄하니 워시드의 스파이스(Spices), 플로랄(Floral) 아로마에 더해 과일향(Fluity)이 느껴졌다.

핸드드립 후 커피를 마시자 SJ133 워시드보다 강한 초콜릿 맛이 주를 이루면서 장미향이 퍼져 나갔다. 또한 메이플 시럽(Maple Syrup)의 단맛도 느껴졌다. 

하지만 SJ133 세미 워시드에서도 역시 워시드에서 느낀 그린(Green)이 느껴졌다. 같은 품종을 가공방식만 달리해 테이스팅한 것이라, 그린(Green)이 어쩌면 SJ133가 지닌 속성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SJ133 세미 워시드(semi-washed) 생두(왼쪽)와 로스팅한 원두. 장미와 자몽, 초콜릿, 메이플 시럽 등의 향미미를 느낄 수 있다.  


SJ133 세미 워시드의 테이스팅 점수는 다음과 같다.  

Aroma 8, Floral 9, Fruit 9, Sour 1, Nutty 8, Toast 8, Burnt 1, Earth 1, Acidity 7, Body 8, Texture 8, Flavor 8, Astringency 1, Residual 1, Soft Swallowing 8, Sweetness 8, Bitterness 1, Balance 8, Defect None. 

100점 만점으로 수치화하면 SJ133 워시드는 80점, 세미 워시드는 85점이다. 

SJ133 세미 워시드를 마시면서 라오스 커피 취재 여정이 떠올랐다. 매일 커피 농장을 찾아 12시간 이상의 강행군 속에서도 오전 6시에 일어나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홀로 수영하면서 메콩강 너머 떠오르는 붉은 태양의 장엄한 광경을 보며 감동했던 일, 하루 100㎏의 생두를 따는 핸드 피커(Hand picker)의 강인한 삶, 지평선과 맞닿은 커피 농장의 그림 같은 풍경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래서 커피 한 잔에는 사유할 수 있는 저마다의 추억이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SJ133 세미 워시드의 색깔은 초콜릿의 브라운(Brown).

커피비평가협회 박영순 회장은 “볼라벤 고원은 예멘,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유명 커피 재배지와 위도가 같은데다 강수량도 풍부해 커피나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그동안 품질 관리가 미흡했다”면서 “스페셜티 커피에 관한 인식을 높이는 동시에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이 제공되고 있어 머지 않아 아시아 커피의 메카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진호 커피비평가협회(CCA) 테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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