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차기 전경련 회장, 혁신적인 구원 투수가 나서야

변화·혁신없는 전경련 새정부서도 설땅 잃어
허창수 회장 내부 쇄신 어렵다며 사의 표명
능력 있는 외부 인사 추대도 적극 고려해야?
신진호 기자 2023-01-16 11:42:26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장이 오는 2월 끝나는 임기를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 2011년 전경련 회장직에 오른 이래 5차례 연임하며 역대 최장수 회장 기록을 남긴 허 회장은 지난 9일 비공개로 열린 회장단 회의에서 현 체제에서는 내부 쇄신이 어렵다는 점을 들며 사의를 표명했다. 아울러 이 자리에서 허 회장은 후임 회장의 추천과 ‘전경련 혁신위원회’를 발족할 것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허 회장의 퇴진은 지난해 말 대통령과 경제단체장들이 모인 자리에 전경련 회장이 초청을 받지 못하면서 이미 예견되었다. 당시 전경련 배제를 두고 여러 가지 말들이 나왔지만, 내부 개혁과 쇄신 없는 전경련이 재계의 창구 역할을 담당하기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사실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전경련이 대통령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등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바짝 엎드리고 있다가 별다른 반성 없이 불쑥 나선 것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도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결국 허 창수 회장과 권태신 상근 부회장의 동반 사의 표명은 그동안 변화에 인색했던 전경련이 정부와 재계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정부에서 ‘전경련 패싱’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대대적인 혁신을 약속했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잠잠해질 때 다시 나서면 된다는 분위기마저 들었다. 

새 정부 들어서도 ‘재계의 맏형’이라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시도만 있었지 변화된 모습과 새로운 전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변화와 혁신이 없는 전경련은 이전 정부나 현 정부 어디에서도 설 땅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이제 관심은 누가 차기 회장에 선임되어 향후 전경련의 혁신을 주도해 나갈 것인가에 쏠려있다. 지금 전경련은 4대 그룹을 포함해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들 대부분이 빠져있는 상태라 과거와 같은 중량감과 혁신 역량을 갖춘 인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유력하게 거론되는 후보들도 저마다의 사정을 앞세워 고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없는 자리’라는 전경련 회장의 어려움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애초 재계 5위인 신동빈 롯데 회장과 7위인 김승연 한화 명예회장이 차기 회장의 물망에 올랐으나, 이들은 개인 사정과 기업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경련 혁신위원장을 맡은 이웅렬 코오롱 명예회장도 검토되었지만 인보사 사태 소송이 끝나지 않아 회장직을 수행하기에 무리라는 의견이 많다. 김윤 삼양그룹 회장과 류진 풍산그룹 회장의 이름도 오르내리지만 기업 규모면에서 전경련 회장을 맡기에 다소 부족하다는 주변의 평가가 이어진다.    

일이 이렇게 되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손 회장은 2005~2013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맡은 바 있고, 2018년 경총 회장에 취임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는 다수의 경제 단체장을 역임해 경험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1939년생으로 고령인 손회장이 전경련을 얼마나 혁신적인 조직으로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경총 회장의 남은 임기를 포기하고 전경련으로 떠나는 것이 서로 간에 부담이 된다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런데 전경련이 진정으로 내부 개혁과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면 굳이 재계 총수들 사이에서 회장 후보자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경제계 전반으로 눈을 돌려 능력 있는 외부 인사를 회장으로 추대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명망 있는 외부 인사의 경우 현재 전경련의 당면 과제 중 하나인 4대 그룹 등의 재가입 문제를 기업의 오너 회장 보다 더 편하게 접촉하고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다. 

또한 정부의 경제·산업 정책 대응에 있어서도 특정 기업에 치우치지 않는 협상력을 발휘한다는 장점이 있다. 1980년대 말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여파로 번진 반재벌 정서로 전경련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비오너 출신인 유창순 회장(1989~1993년)이 투입되어 현안을 원만하게 처리하고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

지금 전경련은 어두운 과거 청산과 빛나는 자산 계승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다. 허 창수 회장은 현재 전경련의 조직과 체제로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토로한다. 전경련의 환골탈태를 주문한 것이다. 

그렇다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외부에서 공정하고 혁신적인 구원 투수를 영입하는 것이다. 재계의 시각을 넘어서 경제계 전반을 아우르면서 우리나라 산업정책에 정통한 전문가를 차기 회장으로 영입해 전경련은 물론이고 우리 산업 전체의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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