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레고랜드 사태’가 심각한 또 다른 이유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 혼선 초래
윤석열 경제팀 시장 보는 눈 없어?
김진태 책임보다는 변명으로 일관
경제위기 넘을 대책은 있는지 의문?
2022-10-31 16:17:13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이 경색되는 등 우리나라 금융시장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발단은 레고랜드 개발을 위해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발행한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해 지급 보증한 강원도가 말을 바꾸면서부터다. ABCP 만기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GJC를 회생신청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혀 사실상 보증을 거절한 것이다. 강원도의 논리는 대출이 연장되더라도 GJC의 현재 수익성을 기반으로 한 예측으로는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회생절차를 통해 부지 매각 계약을 무효화한 뒤 재 매각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투자자의 대응은 단호했다. 만기일인 9월 29일 강원도의 지급 보증이 없는 상태에서 채 ABCP는 연장은 되지 않았고 GJC는 돈을 갚지 못했다. 결국 GJC가 자금 조달을 위해 만든 회사인 아이원제일차가 발행한 2050억원의 ABCP는 지난 5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채권자 입장에서 보면 사업의 수익성보다 국채의 신용과 동급인 지자체의 지급 보증 때문에 투자가 결정된 측면이 강한데, 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거부하는 순간 투자자금에 대한 만기 연장은 불가로 판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GJC에 대한 회생절차 신청의 파장은 강원도와 레고랜드 사업에 국한되지 않고 금융 시장 전체로 일파만파 번져 나갔다. 인플레이션으로 금리 인상이 이어진 탓에 위축된 채권 시장이 한순간 얼어붙었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발행한 채권이 1200억 가량 미달 되었다. 한국도로공사가 발행한 1000억원 규모의 채권은 투자자가 아예 나서지도 않았다. 신용도가 가장 높은 공기업이 이 정도이니 개인 기업은 말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특히 부동산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건설사가 줄도산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 경색 등 채권 시장 내 혼란이 발생하자 정부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판단 아래 지난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대책 발표 후 국고채를 비롯한 채권 금리가 대부분 하락 마감하는 등 일단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시장의 반응은 다소 긍정적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책이 너무 늦게 나왔고 ‘50조원+α’로 현 사태를 못 막을 수도 있다면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한 달간 우리 금융시장을 뒤흔든 레고랜드 사태의 과정을 요약하자면 ‘김진태 지사의 GJC 회생절차 발표→에이원제일차 부도→시중 채권 시장 위축 및 시중 자금 경색→정부의 시장 안정화 대책 발표→자금 시장 다소 안정세’로 현재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레고랜드 사태의 파장은 금융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심각한 요인이 숨겨져 있다.  

첫째, 한국은행의 금융·통화 정책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은 올해 사상 처음으로 금리를 한번에 0.5% 인상하는 빅스텝을 2회 연속 단행하는 등 물가 잡기에 물가 잡기에 주력하고 있다. 더욱이 미연준의 연말 금리 인상 여부에 따라 추가 인상이 불가피할 상황이다. 하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혼란스러운 시장이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한은이 자금시장에 공급자로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물가 안정-긴축 정책’과 ‘금융시장 안정-유동성 공급’이라는 상반된 정책을 고민해야 하는 한은의 입장에서는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강원도에서 시작된 잘못된 판단 한 개가 한은의 금융·통화 정책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함을 더하고 있다.

둘째, 레고랜드 사태 초기에 정부의 대응이 너무 실망스럽다는 점이다. 지난달 김진태 지사가 GJC에 대한 회생 절차를 발표한 후 시중에서는 자금 경색이 일어나고 언론과 경제 전문가들이 경고음을 계속 날렸지만 정부의 태도는 지나치게 안이했다. 레고랜드 사태가 일어나고 약 보름이 지난 14일 추경호 부총리는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레고랜드 사태에 대해 “강원도에서 대응을 해야 할 거 같다”면서 “(시장에) 확산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 부총리가 시장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최상목 경제수석도 레고랜드 사태를 초기에는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현 경제팀이 시장을 보는 눈이 형편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점이 두 번째 심각함이다.

셋째, 김진태 지사는 GJC 회생 절차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정치적인 목적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현 지사의 전임 최문순 지사 흔적 지우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전임 지사 시절 추진된 레고랜드 사업은 문제가 많았고, GJC의 방만한 경영은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아온 사항이다. 그렇다고 전임 지사의 일부 실책을 부각시키기 위해 향후 피장을 고려하지 않고 섣부른 판단을 내린 것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레고랜드 사태의 당사자인 김진태 지사는 ‘좀 미안하다’는 표현으로 대충 넘어 가려한다. 결국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면 경제, 특히 민생 경제의 희생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점이 이번 레고랜드 사태의 또 다른 심각함이다.

이건희 전 삼성회장은 지난 1995년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사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삼류, 기업은 이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약 30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은 세계 일류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류에서 일류에 발전 한 것이다. 반면 이번 레고랜드 사태를 보면서 관료와 행정조직은 여전히 삼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치는 이제 사류도 되지 못하는 ‘등급외’로 분류해야 할 것 같아 씁쓸하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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