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탈세계화와 저물가 시대의 종말

블록화 시대에 맞는 산업구조 재편 서둘러야?
중국 경제와 관계 재설정하는 방안도 필요
2022-09-30 12:02:47

지난 5월 말 스위스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WEF 2022) 연차 총회가 개최되었다. 다보스포럼으로 더 알려진 이번 총회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대면으로 진행되었는데, 올해 관심을 끈 주제는 세계화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다보스포럼의 성격은 글로벌 기업의 CEO들과 투자자들이 주를 이룬 만큼 ‘세계화의 가속화’와 ‘신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여기서 ‘탈세계화’, ‘세계화의 종식’, ‘탈동조화(디커플링)’ 등이 주요 의제로 다루어졌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만큼 탈세계화 경향이 강하다는 반증으로 이해된다. 

탈세계화의 조짐은 미·중 무역 전쟁으로 촉발된 양국 간 패권 다툼이 본격화되면서 시작되었다. 사실 지난 30년간 세계화의 시대에서 가장 이득을 본 국가는 중국이었다. 이 시기에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은 중국 제조업은 전 세계로 값싼 제품을 수출해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그런데 2010년 이후 중국은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제조업의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면서 미국과 국제 분업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그동안은 막대한 무역 적자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부터 값싼 공산품을 수입이 국내 물가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용인이 가능했다. 하지만 미국이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첨단 산업 분야에 대한 중국의 도전은 미국의 세계 패권과 관련되어 있어 상황이 달라진다. 실제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슈퍼컴퓨터 등 일부 분야는 중국이 이미 미국을 앞지르자 미국의 중국 견제는 무역 전쟁을 넘어서 기술 전쟁으로 번지는 양상이 전개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세계화로 인한 편익보다는 미국 패권을 지키는 쪽으로 정책에 변화를 주게 된다. 즉 보호무역주의와 제조업의 자국 유치를 강화하는 한편 세계 경제로부터 중국을 고립하는 반세계화의 길을 걷게 된다.

탈세계화의 두 번째 원인은 글로벌 물류 대란이다. 세계화의 시대에는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가장 세계 각지에 생산기지를 두었으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물류 병목 현상을 경험하면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세계화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각국은 일부 생산 시설이 자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 및 최소한 자국과 가까운 곳(니어쇼어링) 혹은 우방 국가(프랜드쇼어링)로 생산 기지를 옮기는 정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원가 절감이나 생산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세계화보다는 안정적이고 확실한 공급망 확보를 우선시하는 지역화(혹은 블록화)된 형태의 세계화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탈세계화 추세에 방점을 찍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와 이에 대응하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 조치는 세계화를 크게 후퇴시키고 있다. 특히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 이탈리아와 같은 유럽 국가들은 세계화가 지정학적 위험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각국은 갈수록 블록 경제와 경제 민족주의라는 탈세계화로 나아가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한편 탈세계화가 세계 경제 및 각국의 거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세계화 시대에 만들어진 국제 분업 구조가 느슨해지면서 생산 과정에서 효율성이 하락하고, 이에 따른 글로벌 수준의 저성장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탈세계화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물가 상승을 유발한다. 현재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하지만 탈세계화가 진행되면 생산 원가가 상승해 금리 인상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난 30년간 세계화와 함께 지속된 저물가 시대는 탈세계화와 함께 이제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화 시대에 크게 성장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탈세계화가 달갑지 않지만,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 상황에 대비하는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먼저 탈세계화 혹은 블록화 시대에 맞는 산업 구조 재편을 서둘러야 한다. 또한 그동안 우리 경제와 동조화 현상을 보였지만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가는 중국 경제와 관계를 재설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저물가 시대에 익숙한 서민이 받게 될 충격을 최소화하는 복지 제도의 강화와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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