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의 커피노트> ⑤보석 같은 에티오피아 구지 담비 에어룸 내추럴

단맛 풍부하면서 신맛 지나치지 않아…입안에 복합미 가득
신진호 기자 2022-06-20 20:59:28

커피 테이스팅은 즐거움도 주지만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산미(Acidity)가 풍부하면서 단맛(Sweetness)도 좋은 커피라면 표현할 것이 너무도 많아진다. 한마디로 입 안에서 폭죽이 터지면서 ‘말의 폭죽’도 터진다. ‘내가 이처럼 표현력이 풍부했었나’라고 놀라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향미 중에 상대적으로 한 가지 맛이 강한 커피를 여러 개 테이스팅한다면 갑자기 표현력의 빈곤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고통이다.

한 카페에서 커피 테이스팅 수업에 참가한 수강생들이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한국커피비평가협회 제공
한 카페에서 커피 테이스팅 수업에 참가한 수강생들이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커피비평가협회(CCA) 제공

이번 테이스팅은 즐거움보다는 고통이 컸다. 3가지 커피 모두 단맛(Sweetness)이 중점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출발은 좋았다. #1커피를 핸드밀로 분쇄할 때 고소한 Nutty가 아로마로 느껴졌다. 테이스팅을 하니 산미가 약하면서 Sweetness가 입안에 퍼졌다. 10점 만점의 테이스팅 기록지에 점수를 매겼다.  

Aroma 6, Floral 6, Fruit 6, Sour 1, Nutty 6, Toast 7, Burnt 1, Earth 1, Acidity 6, Body 6, Texture 6, Flavor 6. Astringency 1, Residual 1, Soft Swallowing 6, Sweetness 7, Bitterness 1, Balance 6, Defect None.
 
총평(Overall)으로 Malt와 Honey, Orange로 적고, 색깔(Color)은 노란색(Yellow)으로 적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숭늉처럼 구수하다고 느꼈지만 이를 그대로 적을 수가 없었다. 세계 누구와도 소통을 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곡류 가운데 맥아(Malt)를 선택했고, 추수를 앞둔 10월 황금 들녘을 걸으며 느끼는 행복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커피의 Sweetness가 짙지 않다는 것이다. 색깔을 노란색으로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2커피 테이스팅에 들어가니 #1커피의 옅은 Sweetness가 비교가 됐다. #2커피는 #1커피보다 Sweetness가 깊고 풍부했다. 이때부터 혼란이 왔다. 같은 Sweetness를 어떻게 표현할지, 기록지에 어떻게 점수를 기록할지 고민이 됐다. 일단 #2커피에 대한 기록지 점수는 #1과 대동소이하면서 Acidity만 5로 낮췄다. 단맛이 더욱 풍성했기에 신맛을 덜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피가 식으면서 Acidity가 기분 좋게 올라와 화사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총평(Overall)으로  Anise와 Almond, Chocolate로 적은 뒤 색깔(Color)은 단맛의 농도가 좋아 Brown으로 기록했다. 

#2커피는 분쇄할 때 향신료(Spice)와 꽃향(Floral)이 느껴졌는데, 스파이스는 단맛과 단내가 나는 Anise로 특정했다. 그래서 일까? Acidity보다는 Sweetness가 더 느껴지며 Grain을 볶는 듯한 고소함이 느껴졌다.

#1커피보다 풍성한 #2커피의 아로마와 Sweetness는 필자를 어릴 적 뻥튀기 아저씨의 추억으로 데려갔다. 지금이야 거의 사라졌지만 뻥튀기 아저씨가 오면 동네는 꼬마들의 축제의 장이 된다. 집집마다 쌀과 옥수수, 보리 등을 바가지에 담아 아저씨에게 가져가면 아이들은 길게 순서를 기다린다. 뻥튀기 기계에 넣고 돌린 곡물은 20여분 뒤 아저씨의 힘찬 “뻥이요~” 소리와 함께 뻥하고 터지면서 자루에 담기면 곡물의 고소함이 동네 전체에 퍼져 그야말로 행복의 웃음꽃이 핀다. #2커피를 마시면서 Aftertasting이 길어 행복했다.  

#3커피도 산미보다는 Sweetness가 주류 이뤘다. 그러나 Acidity가 #2커피보다 약간 강해 기록지 점수를 6점으로 높였다. 전체적인 점수는 #2커피와 같았다.

#3커피를 분쇄할 때도 Spice의 아로마를 느꼈는데, #2와 다른 정향(Clove)이 생각났다. 그래서 총평(Overall)에  Clove와 Grain, Grape(포도)를 쓴 뒤 색깔(Color)을 곡물류의 단맛과 함께 청포도의 달고 약간의 신맛을 느껴 Brown+Green으로 적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갓 구운 고소한 빵을 먹으면서 청포도의 상큼함도 동시에 느낀 복합적인 감정이 떠올랐다. 

세 가지 커피 모두 Acidity보다 Sweetness가 좋고, 복합미는 두 번째 커피가 제일 좋다는 느낌이었다. #3커피는 입안에서 풍성함이 #2커피보다 약간 떨어지지만 #1커피보다 좋았다. 

#1 브라질 산타루치아 레드 버번 펄프드 내추럴(pulped natural), #2 에티오피아 구찌 담비 에어룸(heirroom) 내추럴(natural), #3 탄자니아 음베야 티피카 워시드(washed). 사진=커피비평가협회(CCA) 제공
#1 브라질 산타루치아 레드 버번 펄프드 내추럴(pulped natural), #2 에티오피아 구지 담비 에어룸(heirloom) 내추럴(natural), #3 탄자니아 음베야 티피카 워시드(washed). 사진=커피비평가협회(CCA) 제공

커피 테이스팅을 마치면서 목록을 살펴봤다. #1커피는 브라질 산타루치아 레드 버번 펄프드 내추럴(pulped natural), #2커피는 에티오피아 구지 담비 에어룸(heirroom) 내추럴(natural), #3커피는 탄자니아 음베야 티피카 워시드(washed)였다.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은 "#1커피는 브라질 특유의 높지 않은 산미가 특징인데, 이 때문에 자칫 자루해질 수 있는 아쉬움이 있지만 딸기잼과 잘 익은 복숭아, 꽃향기도 느낄 수 있다"며 ”#2커피는 아라비카의 고향, 에디오피아 커피의 우수함이 잘 발현되어 있고, #3커피도 찬사를 보낼 만하다“고 말했다. 

신진호 커피비평가협회(CCA) 테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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