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우려되는 ‘민간 주도 경제’?

경제정책에 특정 민간 입김 세지면 형평성 문제 심각하게 발생?
고물가-저성장 복합 경제위기 상황…성장보다 물가 잡기가 먼저
2022-06-20 16:09:13

물가 안정이 가장 시급한 목표이고, 성장은 중장기적인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판교 제2 테크노밸리에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회의’를 주재해 향후 5년간 추진할 경제정책의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윤대통령은 “어려울수록, 또 위기에 처할수록 민간 주도, 시장 주도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 복합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면서 ‘민간 주도 성장’을 새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소득 주도 성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기업과 시장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성장 구조를 정립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먼저 경제정책의 목표는 ‘저성장 극복과 성장-복지의 선순환’이라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목표 달성을 위한 4대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민간 중심 역동 경제 ▲체질개선 도약 경제 ▲미래대비 선도 경제 ▲함께하는 행복경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핵심은 첫 번째로 언급한 ‘민간 중심 역동 경제’로 민간 주도 경제의 철학을 담고 있다. 나머지 체질개선, 미래대비, 행복경제 항목은 주 52시간제 유연화 등 노동시장을 개혁하겠다는 내용을 제외하고는 이전에 나온 정책들과 크게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

민간 주도 경제의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혁신적인 규제 완화 방안을 도입해 기업의 활력을 제고하고, 법인세 정비(최고 25%에서 22%로 인하) 등을 통해 기업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 창출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민간 주도 경제에 대한 의지는 보고서 내용뿐만 아니라 이날 회의 참석자들의 발언에서도 강하게 표출되었다.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는 말로 경제정책에 있어서 민간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민간 주도 경제에선 정부 주도로 정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민간이 적극 참여해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에 대해 경제계는 환영 일색이다. 대한상의는 입장문을 통해 “민간 주도의 원칙 아래 과감한 규제 개혁과 기업 활력 제고에 역점을 쏟기로 것은 적절한 정책 방향”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경련도 “시장경제에 기반한 민간·기업·시장 중심의 경제 운용은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정책 방향”이라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경총 또한 복합 경제위기 극복과 성장 잠재력을 높여가기 위해 새 정부가 규제 혁파, 노동 개혁, 세제 개선 등 정책 과제를 속도감있게 추진해 줄 것을 주문했다. 경제정책의 중심에 기업을 두겠다는 안(案)에 경제계의 불만이 있을 리 만무한 대목이다.

이번에 발표된 경제정책 방향은 복합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겠지만 세부적인 전략에서는 몇 가지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는 ‘민간주도 경제’의 개념에 관한 문제다. 민간주도 경제라는 것은 정부가 경제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민간 부문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거나 세제 감면을 통해 투자를 늘려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창양 산업부 장관이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에 민간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발언에 대통령이 호응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정부의 경제정책에 특정한 민간이 개입한다면 형평성의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다.

둘째는 ‘민간주도 경제’를 추진하는 시기의 문제다. 지금 우리 경제는 ‘고물가-저성장’이라는 복합 경제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부도 올해 경제 전망에서 GDP 성장률은 당초 3.1%에서 2.6%로 낮추고, 물가상승률은 2.2%에서 4.7%로 크게 올리는 등 엄중한 상황임을 인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정부가 구심점이 되어 주도적으로 경제를 이끌고 나간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미국의 뉴딜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새 정부는 복합 경제위기라 말하면서 이 시기에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정책 카드를 꺼내든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아 보인다.

셋째는 ‘민간주도 경제’가 추진하는 순서의 문제이다.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는 당연히 성장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물가-저성장’의 국면에서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난 후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 것이 순서에 맞아 보인다. 지금 우리 경제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의 경우 자이언트 스텝 카드를 꺼내들 정도로 물가 잡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또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에도 미연준(Fed)은 기준금리를 21% 수준까지 올리는 극단적인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 해결에 나섰다. 그 결과 1980년대 미국 경제는 극심한 경기후퇴를 겪기도 했지만 인플레이션은 성공적으로 통제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경제가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가가 불안하면 성장도 없다는 사실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보면 ‘민간’과 ‘성장’이라는 단어가 가장 눈에 많이 들어온다.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민간 부문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정책은 민간의 경제활동을 최대한 자유롭게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복합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물가 안정이 가장 시급한 목표이고, 성장은 중장기적인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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