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혁신없는 일본 경제 침몰은 필연

서구 기술 개선(改善) 통해 1970~80년대 호황 누려
선진국 탈락 위기에도 혁신없어…반면교사로 삼아야
2022-02-14 10:50:30

지금부터 10년 전인 2012년 4월 일본의 경제 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의 산하 연구기관인 ‘21세기 정책연구소’가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 50개 국가와 지역의 경제 추세를 2050년까지 예측한 보고서로, 일본이 효과적인 성장 전략을 펴지 못할 경우 2041~2050년쯤에는 선진국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4개의 시나리오에 기초해 일본 경제의 성장률과 경제 규모를 예측하고 있다. 이 중 일본의 생산성이 다른 선진국과 동일한 수준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서 작성된 ‘기준 시나리오’는 일본이 2030년대부터 마이너스 성장에 돌입하면서 2041~2050년의 GDP 성장률은 평균 마이너스 0.47%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현재 세계 3위인 일본의 GDP는 4위로 떨어지고, 규모는 중국과 미국의 약 1/6 수준으로 축소된다. 1인당 GDP도 세계 18위로 떨어지면서 한국(14위)에게도 추월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비관 시나리오’는 일본 정부 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2010년대에 바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고 2041~2050년에는 마이너스 1.32%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GDP 규모도 세계 9위로 미끄러져 중국과 미국 GDP의 l/8 수준까지 줄어 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것이 10년 전에 나왔던 일본의 선진국 탈락 가능성을 예측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당시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2012년을 기준으로 볼 때 비록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경제 규모가 세계 9위까지 곤두박질치고 1인당 GDP가 한국에 추월당한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크게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이단렌 보고서가 나온 지 10년 만에 비슷한 내용이 일본 내부에서 나왔다. 일본의 경제학자인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는 최근 한 경제전문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일본이 선진국 탈락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일본의 1인당 GDP가 OECD 회원국 평균 아래로 떨어졌고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1인당 GDP는 장기 불황이 시작된 1990년대부터 순위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1인당 GDP는 경쟁국의 약진에 비해 제자리걸음했기 때문이다. 2020년 OECD 회원국 평균을 1로 잡았을 때 일본의 1인당 GDP는 0.939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고 2030년경이 되면 일본의 1인당 GDP는 OECD 평균의 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상황이 현실화된다면 일본을 더 이상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노구치 교수의 주장이다.

2012년 보고서와 2022년 노구치 교수의 주장은 일본이 현재의 성장률 정체 현상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선진국 탈락 가능성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2030년 이후에는 한국과 대만에 추월을 당하는 등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비중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내용도 담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에 이어 ‘잃어버린 30년’의 시기에도 같은 경고가 등장한 것이다.

일본 경제의 암울한 미래가 주기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지난 30년간 성장률이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률 정체는 ‘혁신’을 외면한 일본 사회, 특히 제조업의 보수적인 성향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70~80년대 일본 경제는 ‘가이센(改善)’을 기반으로 하는 제조업을 근간으로 호황을 누렸다. 서구에서 수입된 다양한 기술을 끊임없이 개선해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는 장인 정신이 경제 번영의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제조업 시대에는 가이센이 일본 성장을 상징하는 문화로 국제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정보·통신 시대로 접어들면서 일본의 장점은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혁신’을 요구하는 시대에 일본은 여전히 ‘개선’을 바탕으로 제품의 품질을 중시하는 아날로그적인 사고에 머무르는 데 기인한다. 그 결과 일본 기업들은 미국의 애플과 구글은 물론이고 삼성, TSMC와 같은 한국과 대만의 혁신적인 기업에게도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개선(改善)은 잘하지만 혁신(革新)에 인색한 일본 기업이 한계에 봉착한 결과인 셈이다.

앞서 노구치 교수는 일본이 성장률을 끌어 올리지 않으면 선진국에서 탈락할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서구의 기술을 모방하고 개선하는 것에 익숙한 일본이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성장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00년’ 시리즈는 계속 업데이트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경제는 과거 일본을 모델로 성장했지만 현재는 중국의 거센 추격에 직면해 있다.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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